[Millennium Actress] OST, 2002

1. 색다른 삶의 가능성

뻔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뻔한 인생을 벗어난 삶은 리스크가 클뿐더러 구체적인 삶의 형태를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학창 시절의 어느 날, 운명처럼 만나게 된 뮤지션이 있었다. 히라사와 스스무. 히라사와 스스무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충격 중 하나였다. 남들과 다른, 색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해준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2. 히라사와 스스무?

대다수 사람들에게 히라사와 스스무라는 이름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천년여우〉, 〈망상대리인〉, 〈파프리카〉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남기고 떠난 감독, 故콘 사토시의 음악적 페르소나이자 미우라 켄타로 원작의 〈베르세르크〉 관련 애니메이션 및 게임에서 주제곡을 담당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히라사와 스스무라는 뮤지션이 가진 깊이와 독특함을 소개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3. 신비롭고 난해한 가사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을 처음 접한 사람은 가장 먼저 신비로우면서도 난해한 가사에서 충격을 받게 된다. 일본어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히라사와 스스무의 노래 가사를 듣고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로타티온(로터스-2)’의 노래 가사를 예로 들어 보자. “パラレルに行く船団に全ての君の日を乗せて(나란히 나아가는 선단에 당신의 모든 날들을 싣고서) / ランダムに行く雲のようにうまれてたはずと (랜덤하게 흘러가는 구름처럼 태어났을 터라고) / 千年を知る 君の声が全ての月に木霊する (천년을 아는 네 목소리가 모든 달에게 메아리치네)” 이 가사의 의미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천재거나, 거짓말쟁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4. 보기 드문 독특한 인물

난해한 것은 노래 가사뿐만이 아니다. 히라사와 스스무의 평소 언행도 난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9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의 가능성을 예찬해왔던 그는 트위터를 통해 매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에세이처럼 연재하고 있다. 문제는 아무도 그의 트윗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트윗을 보며 마치 완벽히 이해한 것처럼 반응하는 것이 팬덤을 대표하는 놀이가 되었을 정도다.

5. 범상치 않은 음악 세계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은 펑크 록과 신스 펑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사이버펑크 장르가 연상되곤 한다. 이는 그의 음악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과도 연관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터넷을 위시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새로운 신비를 발견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PC라는 단어가 보급되지도 않았을 무렵인 1990년부터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이를 본인의 음악 속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왔기 때문이다.

6. 다시, 색다른 삶의 가능성

히라사와 스스무가 내게 일으킨 충격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그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말았다. 히라사와 스스무라는 뮤지션이 내게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는 명료하다. 뻔한 인생을 벗어나서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히라사와 스스무는 컬트적인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의 팬덤은 히라사와 스스무를 매개로 독특한 인터넷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故콘 사토시께서도 이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색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롤모델로서, 히라사와 스스무는 그의 별명대로 ‘스승’이라 불릴 만하다. 비록 뻔한 인생에서 완전히 일탈하여 새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 산업에 투신해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데는 히라사와 스스무로부터 얻은 용기가 큰 힘이 되었다.

7. 마무리를 지으며

히라사와 스스무의 모든 곡을 좋아하기 때문에인생 음악한 곡을 선정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의 고뇌가 필요했다. 결국로타티온(로터스-2)’를 선정하게 되었는데, 서정적이면서도 듣기가 편해 마음 놓고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컸다. 〈천년여우〉는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 로터스를 듣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인데, 히라사와 스스무가 이 영화의 주제곡을 맡게 되면서 다시 〈천년여우〉에서 영감을 받아 짓게 되었다. 이 순환의 과정은 노래의 핵심 주제인윤회를 자연스럽게 구현하고 있다. 마치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이 내 삶에 영감을 주고, 그렇게 영감을 받은 내 삶이 다시 그의 음악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