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우린 너무나 힘들었는데
분명히 우린 너무나 지쳤었는데

더 이상 서로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는데

그런데 왜 난 널 그리워할까
미치도록 난

내 잘못으로 이제 모두 다 기억돼
그땐 다 고갈된 사랑이라고

느꼈던 가슴 그 바닥 깊은 곳
그 가는 핏줄 속에

넌 흐르고 있었어 내 온몸을 돌아
나의 뇌리를 스치면 내 기억은 돌변하고
아름다웠던 기억만 남긴 채
소중한 추억만 남긴 채
다 없애버린 너

왜곡이란 걸 가끔 깨달을 때에도
그 왜곡에 빠지길 원하는 나

현실은 이제
아무것도 내게 위안이 안돼

지나간 자리의 잔향이 더 강렬해
좋은 널 모두 다 합쳐 놓은 듯

그 향에 취해 들이마신 호흡
스며든 혈관 속에

넌 흐르고 있었어 내 온몸을 돌아
나의 뇌리를 스치면 내 기억은 돌변하고
아름다웠던 기억만 남긴 채
소중한 추억만 남긴 채
다 없애버린 너

다 지나갈 거라고
모두 다 그랬다고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Know

나도 모를 내일 따위 걱정은 안 할래
왜곡된 지금의 기억 속을 헤맬래

2024 [월간 윤종신] 11월호 ‘기억의 왜곡’은 왜곡된 기억에 매달리는 한 남자의 복잡하고 어두운 심연을 담은 곡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물기는커녕 더욱 깊어지는 이별의 상처와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탈바꿈되는 기억, 강렬하고 깊어지는 그리움을 표현했다. 가사 속 남자는 자신 안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옛 연인을 감각하며 기꺼이 그리움 속에 갇힌다. 그리고 현실과 기억의 괴리를 실감하며 왜곡된 기억 속에 그대로 머물기를 원한다. 사람이나 기억이 내 몸속 어딘가에 바이러스처럼 잔존하는 상황. 폐 속에 가득 차 있는 공기처럼, 몸에 흐르는 피처럼 그렇게 내 안에 스며들어 있는 상황. 윤종신은 그러한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이별과 기억, 그리움처럼 자신이 천착해 온 단어를 서사화했다. 윤종신이 가사를 쓰고, 윤종신과 이근호가 함께 작곡했다.

“가끔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 예전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번씩 놀라게 돼요. 서로의 기억이 너무나도 달라서. 예를 들어서 저에게는 영화 속 어떤 씬처럼 또렷하게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있었던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완전히 그게 완전히 다른 장면인 거죠. 사실 관계뿐만 아니라 감정도 다르고 핵심도 달라요. 같은 상황임에도 서로 다른 대본을 써놓은 것처럼. 마치 각자 다른 카메라로, 다른 각도와 다른 샷 크기로 장면을 찍어놓은 것처럼. 같은 사건을 여러 시점으로 보여주면서 전개되는 영화 같은 거죠. 나이 때문인지 요즘 이런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심지어 여러 날의 기억을 하나로 합치거나 섞어 놓기도 하는데, 어쩌면 저는 제가 편한 대로, 저 좋을 대로 기억을 왜곡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윤종신은 이번 가사를 쓰는 동안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미화되는 기억의 회로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어떤 사건이나 감정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 그러한 경향은 나이를 먹을 수록 더욱 강해지고 빈번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생존 본능은 아닐까. 잘 살아가기 위해서, 남은 생을 잘 꾸려가기 위해서 본능처럼 지난 시간을 자꾸만 좋은 쪽으로 왜곡하려는 건 아닐까. 윤종신은 이러한 질문 속에서 삶을 위해서 우리가 자주 하는 오해와 착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떤 기억을 우리가 기꺼이 왜곡하는 심리를 가사에 담아보고자 했다.

“생각해 보면 왜곡이나 착각, 오해 같은 단어는 보통은 부정적인 맥락 속에서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닌 것 같거든요. 좋은 왜곡, 좋은 착각, 좋은 오해가 우리 삶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그래요. 먼 훗날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어쩌려고 이랬나 싶을 정도로, 도대체 무슨 정신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내 안에서 말도 안 되는 긍정적인 왜곡이 일어나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죠. 그리고 결국 그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든지 간에, 그 순간의 기억은 내 삶을 무척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줘요. 싸운 기억, 다툰 기억은 희미해져도 사랑에 빠졌던 기억은 제법 오래가죠. 어쩌면 우리는 오래도록 내 안에 남기고 싶은 기억을 자꾸 더 좋은 방향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이 우리를 계속 살게 해줄 테니까요.”

[11월호 이야기] “왜곡과 착각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Music]

Lyrics by 윤종신
Composed by 윤종신, 이근호
Arranged by 이근호, 박한서
Rhythm & Programming 박한서
Keyboards 이근호, 박한서
Bass 한동희
Guitar 채성빈

Recording by 윤종신
Mixed by 김일호 (@지음스튜디오)
Mastered by 권남우(@821 Sound)

[MV]

프로덕션 구달스필름
편집 장소하 이왕석
제작 월간윤종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