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라는 이름의 혜성을 찾아
일본 음악을 즐겨 듣게 된 지도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우연히 친구의 CDP를 통해 접한 생경한 세계가, 지금은 더할 나위 없는 친구로서 내 옆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입장에서 최근 들려오는 일본 음악에 대한 유례없는 관심이 조금은 어색하고 갸우뚱할 때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사회인이 되고 심지어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있음에도, 심지어 꽤 최근까지 ‘제이팝을 듣는 행위’는 고립이나 외로움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가끔 흥미를 보이는 이들이 있어도, 대부분 ‘옛날이 좋았지’와 같은 부류의 추억 이야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이건 원래도 나와는 거리가 있었던 엑스 재팬을 더욱 싫어하게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어느덧 시대는 변했고, 콘텐츠들은 SNS와 OTT라는 양탄자를 타고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의 팀들로만 꾸려진 록 페스티벌 관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취향을 공유하기는커녕 드러내기도 쉽지 않은 현실에 대항할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엔 일본 음악 듣는다고 ‘X바리’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엔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유별난 사람으로 비치곤 했었다. 더군다나 어느 때보다도 양국 간의 감정이 악화하고, 동시에 한류가 KPOP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가던 때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의 기호는 좀처럼 남에게 말하기 힘든 모종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대세에 따르기보단 남들이 흔히 말하는 오타쿠처럼 사는 게 훨씬 행복하겠지 싶어 굳이 삶의 노선을 바꾸진 않았다. 대신 그냥 내가 입을 다물지 싶었다. 그런 생각을 계기로 일명 ‘일코’, 무난한 취향을 가진 일반인 행세를 자처하기 시작했던 것이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돌아보면, 2013년의 여름은 서서히 저물어가던 청춘의 때늦은 클라이맥스였다. 더듬더듬 일본어로 티켓을 구입해 홀로 짐을 싸 도쿄에서 약 3시간 정도 떨어진, 이름도 처음 듣는 이바라키현 히타치나카시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도착. 그날부터 3일간 이어진 <Rock in Japan>의 현장은, 나에게 만큼은 마치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별세계와도 같았다. 라이브의 생동감도 생동감이었지만, 당시 유튜브에 뮤직비디오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던 수많은 뮤지션들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나마 같은 장소에서 그 흥분을 공유하는 수많은 관객의 존재가 이 경험이 꿈이 아닌 생시임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주었다.
그 비현실감을 가장 극적으로 체감하게 해주었던 것이 바로 둘째 날 헤드라이너였던 범프 오브 치킨이었다. 내 생각을 한참 웃도는 엄청난 존재감은, 공연 시작부터 끝 모를 환희로 변모해 내 온몸을 짓눌렀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본 무대가 끝난 뒤, 뼛속까지 퍼진 전율을 추스르고 있는 내게 들려오는 노랫소리.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그것은 앵콜요청을 대신해 울려 퍼지던 5만여 명의 ‘Supernova’ 합창이었다. 그 순간, 나 혼자만 숨어서 좋아했던 그 설움과 외로움에 대한 보상을 다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구나’라는 사실, 그것이 움켜쥘 수 있을 만큼 코앞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렇게 내 인생에 한 번뿐일 꿈결 속에서 한참을 따라 부를 즈음, 이윽고 등장한 후지와라 모토오가 위풍당당이 내뱉던 한마디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마지막 곡입니다. 天体観測!(텐타이칸소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