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NS](2024)
“사람이 허기가 지면요, 남의 집 담장을 넘게 돼 있어요”

서로의 육체를 맹렬하게 탐하던 불꽃 같은 연애가 지나고 7년 후,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 부부에게 남은 건 팔릴 생각도 없이 자꾸만 떨어지는 아파트 집값과 매일 같이 오르는 대출 이자, 게다가 예전 같지 않게 식어버린 몸뚱이뿐이다. 시리즈 제목 <LTNS>가 뜻하는 바 그대로 “Long Time No Sex” 상태에 빠진 것이다.

우진과 사무엘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된다.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민망함이 일렁이는 얼굴로 사무엘이 말한다. “탈모약을 먹어서 그런가…” 우진이 그런 사무엘을 달래며 답한다. “우리 날씨라고 생각하자. 맑은 날도 있으면 흐린 날도 있는 거지.” 그렇게 시간이 흐른 또 어느 날, 신경 써서 준비한 이벤트에 실패한 우진이 실망한 표정으로 묻는다. “솔직히 너 이제 나 여자로 안 보이지?” 그런 우진에게 사무엘은, “그런 거 진짜 아니야, 전 여전히 멋지고 섹시해. 내 잘못이야 이거.” 그리고 우진, “니 말이랑 몸이랑 너무 다르니까 뭘 믿어야 될지 솔직히 모르겠어.” 발끈한 사무엘 벌떡 몸을 일으키며, “진짜 답답한 건 나 아니겠어?”

비슷한 생활이 반복되던 어느 날, 우진은 먹고 사는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떠올린다. 호텔 프런트에서 일하며 호텔에 드나드는 진상 불륜 커플 정보 수집을 업무 루틴 중 하나로 삼던 우진은 스타트업 창업 실패 이후 택시 운전사로 전직한 남편 사무엘과 불륜 커플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작은 범죄 조직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딱 집값이 떨어진 만큼만, 대출을 갚을 정도만 말이다. 7억에 입주했으나 지금은 5억 5천까지 떨어진 서울 변두리 복도식 아파트 113동 609호를 온전한 내 재산으로 만들기 위해 부부는 마침내 투잡을 시작한다. 둘은 임시적인 공간에서, 임시적인 순간을 훔쳐보고 포착하는 추적자의 일을 행함과 동시에 섹스리스 탈출에도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LTNS](2024)
도시 생활과 불륜의 표정

“성적 욕망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도시이지만, 연애를 둘러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사회적 관습으로 그 성적 욕망을 좌절시키는 것도 도시다.”
– 리처드 윌리엄스, 『무엇이 도시의 얼굴을 만드는가』, 현암사, 2021, p. 134.

매 분기,‘도파민’이라는 단어로 넘쳐나는 불륜 드라마가 쏟아져 나온다. 이들 드라마가 인물을 움직여 닿으려는 목표 지점은 대부분 동일하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배반한 상대를 향한 화끈하고 통쾌한 복수, 불륜을 행하는 이들의 야릇한 육체 행위, 턱 밑까지 바짝 다가온 발각 위기와 스릴, 과거를 잊을 새로운 사랑과 물질적인 성취 보여주기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난 요즘 불륜만 쫓아, 무조건 불륜이 나와야 재밌어”라고 습관적으로 말하곤 하는 불륜물 중독자 입장에서 그간 등장한 콘텐츠에 늘 툴툴대곤 하는 지점이 있었다. 치정극 사이에 생활이 없다는 점, 바람난 표정이 짜맞춘 듯 일관적이라는 점, 그 지점이 항상 아쉬웠다. 함께했던 두 인간이 갈라서는 과정에는 육체가 먼저냐 정신이 먼저냐의 뜨거운 논쟁부터 추접스러운 욕망은 물론 서로를 매섭게 탓하다 소진되는 지긋지긋함이 도사리고 있다. 은밀한 사랑의 불꽃이 불붙인 개싸움이 끝났을 때, 남은 인간들은 통쾌하기만 할까? 연루된 이들은 앞으로 다가올 매일을 어떻게 살지?

<LTNS>에는 생활이 있다. 불륜하는 이들도 그렇지 않는 이들도 해가 뜨면 빚을 갚기 위해, 매일 다가오는 생활을 꾸리기 위해 출근하고, 점심 먹고, 등산하고, 교회에 가고, 집안 행사를 치르고, 친구를 만나고, 육아하고, 청소하고, 세차하고, 빨래를 개야 하는 생활인이다. <LTNS>는 이동하는 택시를 타고 임시 거처 호텔을 스치는 이들의 도시 생활을 스마트폰과 CCTV로 멀고 가까운 거리에서 엿보려 한다. 어떤 의미에서 불륜은 도시인의 평범하고 반복되는 생활 사이에 생활의 난처함이나 적적함을 잊게 해주는 짜릿한 육체적 욕망과 사랑의 유혹이 침투한 임시적 사랑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외도를 둘러싼 모든 순간이 더럽고 추접스럽기만 한 것도, 자극적인 판타지이기만 한 것도 아니며, 멀리서 지켜보면 우스꽝스러운 면이 훨씬 많다는 걸 사실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저 멀리 위에서 부감으로 지켜보면 볼수록 도시가 품은 성적 욕망 또한 비슷한 형태로 변형되고 좌절한다는 것 역시 말이다.

그동안 한국 독립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의 면면을 사랑했던 이들이라면, 혹은 몰랐던 얼굴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LTNS>를 시청하는 즐거움은 배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시리즈를 만든 크리에이터 ‘프리티 빅브라더’는 전‘고운’, 임‘대형’ 두 감독이 결성한 창작집단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에 커플로 등장했던 적 있는 배우 이솜, 안재홍 외에도 기주봉, 이학주, 김새벽 등 독립영화의 얼굴들이 다양한 커플의 각양각색 생활상을 갖가지 표정으로 변주하는 재미를 엿볼 수 있다. 나는 배우 황현빈이 기독 유부녀 레즈비언 ‘수지’로 등장해 관능적인 섹시미를 발산할 때, 중후하고 멋진 역할을 오가던 배우 정진영이 리복 트랙수트에 금목걸이를 두른 마초 로맨티스트 석재상 ‘강백호’를 입었을 때, 배우 옥자연이 사각 안경테에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성실하게 묶은 청소광 옆집 여자 ‘정민수’로 불쑥 등장했을 때, 그 외에도 독립영화에서 자주 만나던 배우들이 적재적소에 등장해 반짝이고 있을 때,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니 아직 이 시리즈를 관람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세단을 몰아 내달리는 <LTNS>의 쾌속 질주에 기꺼이 빠져보시기를.

 <LTNS>(2024)
OTT Tving
극본 & 연출 프리티 빅브라더
출연 이솜, 안재홍 외
시놉시스
짠한 현실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부부 우진과 사무엘이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의 뒤를 쫓으며 일어나는 예측불허 고자극 불륜 추적 활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