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자’에 관한 일이삼
노래방 가실 분. 저요. 지금 괜찮으세요? 네. 20분 뒤에 그 앞에서 뵐까요? 네.
순수하게 노래를 부르기 위한 만남이다 보니 필요 이상의 정보는 과감히 생략된다. 간편하고 효율적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요즘같이 행인의 손에 들려있는 무언가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는 흉흉한 시절에는 두려움도 함께 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주로 물병을 들고 쭈뼛쭈뼛 걸어와 “당근?”하고 인사를 건네는 이들은 전부 남성들이다. 코인 노래방의 협소함을 생각하면 동성인 그들이 다소 편하게 여겨지지만, 이런 일상의 사소한 여흥조차 누릴 수 있는 성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겪을 때마다 영 입맛이 쓰다. 그 모든 게 권력인 것이다. 마치 밤 산책처럼.
선곡의 신중함, 그것을 담아내는 톤, 간주 사이의 여유, 의례적인 박수를 받은 후의 자잘한 액션들을 보자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 느껴지곤 한다. 사적인 정보를 일절 나누지 않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눈 앞의 사람이 더 느껴진다고 할까. 못된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모멘트들이 재밌다. 낯선 너와 내가 이렇게 다르고 이렇게 비슷해.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 새롭고, 친밀감은 왠지 더더더 따뜻해. 가장 최근에 만난 이의 송 리스트는 내 것과도 많이 겹쳐 듣는 동안 편안했는데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왜 처음 만난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갑자기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롸잇나우 노래를 부르고 싶고, 이 노래를 들어줄 아무라도 필요하다. 헛헛하니까. 고심 끝에 그가 고른 그날의 마지막 선곡은 선우정아의 <도망가자>였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예요, 짧은 전주 위에 말을 띄우니 요즘엔 정말 도망가고 싶어서요, 라는 개인사가 밭게 돌아왔다. 그리고 시작된 노래.
2. <도망가자>는 내게 특별한 곡이다. 막상 특별하다고 언급하고 보니 짐짓 쑥스러워지는데, 보통 노래가 노래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도망가자>는 유독 내게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다. 그와는 4년 전 경주 여행에서 우연히 만났다. 갑자기 꽂힌 노래처럼 단박에 좋아졌고, 우회하는 방법을 몰라서 들이받듯이 고백하고 차였다. <도망가자>는 그런 그가 알려준 노래였다. 지난 연애의 파국으로 황폐해져 있던 내게 <도망가자>의 음색과 가사는 당장 기댈 수 있는 아득한 무언가였다. 그의 외모도 다정함도 좋았지만 그런 노랠 그즈음 내 손에 쥐어 준 안목과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 어디든 좋으니 함께 도망가자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달까. 그렇게 덩달아 기대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서울 생활도 청산하고 그곳에서 지낼 작정까지 했었다. 그만큼 진심이었고, 그만큼 부담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래방에서 드물게 <도망가자>를 부르고 있다 보면 위태로웠던 그때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얼마나 평안해졌는지 알게 된다. 그렇다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갈증이 해소가 됐다거나 우습지, 별 거 아니었지 식의 폄하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 마음은 여전히 온전히 그 노래 안에 있다. 그때처럼 매일 들춰보지 않을 뿐. 그런 애틋함 덕에 나는 <도망가자>가 너무 특별하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이러한 사연이 담긴 ‘당신의 노래’가 있을 것이고.
3. 최근에 운 좋게 선우정아의 인터뷰에 따라나설 기회가 있었다. 나는 현재 서울에서 사진을 찍고 있고, 걔 중에서도 인터뷰 촬영이 주된 일이다. 유명인을 만날 땐 확실히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더 긴장이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 사람을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일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갖게 된 그의 이미지와 실제의 이미지가 너무 다를까 봐 그 다름으로 실망할까 봐 그걸 가지고 호사가처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까 봐. 실제로 만난 그는 생각보다 밝고 자기 객관화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말하는 손끝이 춤추듯 예리하고 다채로웠다. 경험상 좋은 인터뷰의 징조였다.
그날 <도망가자>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이 있었다. 우선 세 번째 정규앨범을 위해 철저한 기획하에 만들어진 곡이라는 것,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다 보니 오히려 남의 노래 부르듯 어떤 자리에서든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부를 수밖에 없는 곡이라는 것.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앨범에서 대중성이 있는 발라드를 타이틀로 내세워 본인의 대표곡으로 일궈낸 안목과 비록 나의 창작물이지만 이제 더는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고 거리두기를 할 줄 아는 그 균형감이 빛을 발했다랄까. 그렇게 <도망가자>는 한 명의 대중인 나의 노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좋은 노래는 이런 식으로 세상에 나오고 남는 거구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숨겨진 이치를 깨달은 양 그렇군, 을 거듭 되뇌었다.
코인노래방에서 그의 <도망가자>를 다 듣고 우린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실은 궁금했고 묻고 싶었다.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도망치고 싶은지. 하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룰의 위반 같은 것이었으므로. 오늘의 우리는 우연히 만나 각자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고 헤어지면 그만일 뿐, 그 이상의 관심은 애석하게도 실례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다시 한 번 <도망가자>의 가사를 살펴본다. 그저 ‘도망가자’는 회피의 감정에 꽂혀있던 어둔 날들이 지났는지, 지금 눈에 드는 문장은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라는 부분. 나를 지나쳐 간 무수한 ‘그’들에게 건네는 가만한 축복 같은 말 같아서 자꾸만 눈이 마음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