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 [2018 월간 윤종신 1월호 ‘Slow Starter’], 2018
모든 직장인에게는 회사에서 막내라고 불리던 사회초년생 시절이 있다. 나의 과거 2~3년 차 시절, 지금 돌아보면 별 일 아니었는데 뭘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힘들어했는지. 그 당시엔 내가 모든 세상의 짐을 짊어진 것 같았다.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는데 남들보다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는 자책감 속에서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또래 친구들을 시기하고 부러워했다. 지금 그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오글거린다. 20대니까 할 수 있는 귀여운 생각이라며 애써 위안을 삼아 본다. 아마 지금도 많은 20대의 젊은 사회초년생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나의 인생곡을 설명하려면 사회초년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첫 회사는 광고대행사였다. 항상 일이 많았지만 마침 다음 날 중요한 PT가 있어 더욱 바빴던 어느 날, 막내였던 나는 오전부터 정신없이 일을 했다. 늦은 밤까지 일하고 지친 몸으로 집에 가던 퇴근길.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택시에서 우연히 듣게 된 윤종신의 <Slow Starter>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멜로디와 가사는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됐다. 그 이후부터 윤종신이라는 뮤지션은 내가 살아가면서 영감을 받는 나의 ‘뮤즈’가 됐다. 그래서 얼마 전 발간한 나의 독립출판 에세이에도 윤종신에 대한 짧을 글을 싣기도 했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미 윤종신의 <Slow Starter>라는 곡을 들어봤을 것이다. 한 편의 청춘드라마 같은 뮤직비디오도 봤을까? 뮤직비디오에는 피겨스케이팅 이준형 선수가 나오는데 평창 동계 올림픽 선발전에서 아쉽게 탈락한 뒤 다시 다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힘든 과정이지만 다음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뮤비 속 이준형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큰 울림과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이준형(이준우) 선수는 은퇴 후 뮤지컬 배우로 전향해 또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한다. 피겨 선수로서는 최고에 올라서진 못했지만 그 경험과 노력을 발판 삼아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슬로우 스타터’라는 말에 어울리는 멋진 삶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9년 차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로, 그리고 1인 사업자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내가 듣는 <Slow Starter>는 사회초년생이었던 그 시절과는 또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말. 누군가에겐 굉장히 진취적이고 멋있는 말이지만, 도전을 하는 당사자에게는 무모한 시도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말이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실패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에 사로잡힐 때마다 <Slow Starter>를 들으며 해답을 찾는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이 곡은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를 전해준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포기하지 마 아프면 아픈 얘기
그 모든 순간순간 나만의 이야기야
멈추려 하지 마
분명 날아오를 기회가 와 좀 늦더라도
내 눈가의 주름 깊은 곳엔 뭐가 담길지
궁금하지 않니 답은 조금 미룬 채
지금은 조금 더 부딪혀 봐

이 곡을 통해 윤종신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저의 40대가 무척 알찼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가능했던 건 2, 30대 시절의 무모한 시도와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모든 게 서툴렀던 20대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마음의 위안이 되었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요즘에는 용기를 주는 곡. 느리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간다. 조금 더 부딪혀 보자. 앞으로 펼쳐질 나의 재밌는 날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