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

정치 1번지의 정치

종로구민으로 사는 일은 정치라는 교차로를 오가며 이리저리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애드벌룬을 발견한다. 커다랗고 동그란 물체가 시내 한복판에 둥실 떠 있는 것만으로도 꽤 낭만적인 기분.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이 애드벌룬, 박근혜 석방 집회의 선전물이다. 들떴던 마음이 ‘푸슉’하고 쪼그라든다. 그때 왼쪽 귀에 색소폰 연주로 편곡한 감미로운 재즈 음악이 들려온다. ‘앗, 이 노래는 분명 나도 아는 노래?’ 입술에 자연스레 가사가 맺히는 그 순간! 노래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이 진정성을 어떻게 받아들어야할지 몰라 껄껄 웃어버리고 마는데… 그렇다. 이 노래는 재즈풍으로 편곡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던 것이다!

종로에서는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빠르게 사라진다. 정치인의 이름과 논란거리도 마찬가지로 어느 지역보다도 빽빽한 밀도로 불려 나왔다가 잊힌다. 내게는 선거철이면 광기 어린 선거공보를 탐독하는 악취미가 있는데, 종로구에는 그런 후보가 유난히 많이 출마한다. 이곳은 맨몸으로 부조리를 고발하고 싸우는 사람들, 진실 규명을 호소하는 사람들과 함께, 처음 본 사람에게도 천국행과 지옥행을 쉬이 권하는 목소리 큰 외향인, 온몸을 태극기로 휘감은 태꾸중독자 등등이 각기 다른 모양새로 서 있는 그야말로 정치 용광로이다.

이들과 겹쳐진 채로 종로를 걷다 보면, 근래의 정치란 전반적으로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이리저리 굴려지는 바람 빠진 축구공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기성 정치를 이야기로 재구성한다면 필연적으로 미친 기운으로 넘실대고 짜증 나지만 끝장나게 웃기는, 허나 씁쓸하기도 하고 섬뜩한 뒷맛도 남는 블랙 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다. 웨이브(wavve)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가 폭소와 실소, 냉소와 조소를 시도 때도 없이 유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잠룡이라는 이름의 롤러코스터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이야기는 크게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전국민적 사랑을 받은 사격선수이자 전 야당 국회의원 ‘이정은’이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정권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된다. 핵심 정책인 ‘문화예술체육계 범죄 전담 수사처’인 ‘체수처’ 출범을 위해 애쓰는 상황에 ‘유시민처럼 되고 싶지만, 딱히 콘텐츠는 없는’ 이정은의 남편 진보 시사평론가 ‘김성남’이 갑작스레 납치된다. 일이 ‘스크류바’처럼 배배 꼬여만 가는 와중에, 이정은은 이 상황을 돌파하며 뜻밖에 대선 잠룡으로 급부상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정은은 야망 있는 야당의 4선 중진의원 차정원과의 공조를 약속한다. 급사에 강한 체육인이자 군인 출신인 여성과 닳고 닳은 것처럼 보이지만 참고 버티며 이를 갈아온 검사 출신의 여성, 이 두 여성 정치인이 손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 자신이 맡은 임무를 어떻게든 수행하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공무원들이 있다. 이들은 삼국지나 프로야구 비유 같은 비장한 말들이 넘나들고 징그럽고 추접스러운 일이 득실대는 정치판에서 일이 되게 하는, 말 그대로 직장인이다. 비밀스러운 수행비서 ‘김수진’, 눈치빠르고 정확한 대변인 ‘신원희’, 멘탈 약한 기조실장 ‘최수종’, 쿨한 브이로그 담당 ‘맹소담’, 유두 민감증으로 고생하는 경호원 ‘고지섭’ 등등을 통해 이야기는 정치 드라마에서 오피스 시트콤으로 확장된다. 이들 사이, 코로나19, 여성혐오, 청년문제, 메타버스, 가짜뉴스, 북한문제 같은 현재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키워드가 불꽃놀이처럼 팡팡 터진다.

YTN <돌발영상> 같은 진짜로 단련된 사람에게 기존 정치 드라마에서 리얼리티를 찾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현실의 한국 정치를 똑같이 베껴 만든 이야기를 보며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 대신 이유 있는 욕망을 보고 싶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최대한 가까웠으면 좋겠다. 과장된 통쾌한 한 방보다는 사회를 향한 고민이 켜켜이 쌓여 무언가가 시작되는 과정을 보고 싶다. 스타 정치인 한 사람의 이야기만 말고, 출퇴근의 애환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도 알아가고 싶다. 이왕이면 여성들이 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날렵하고 유쾌한 웃음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바람이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 있다.

백악관 웨스트윙의 주인이 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셀레나 마이어’와 참모들의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정치 시트콤 <부통령이 필요해(Veep)>는 시즌 7까지 방송됐다. 한국 대통령 임기는 총 5년이다. 이정은과 차정원은 이제 막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이들을 차차기 대선에서 만나려면? 못해도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시즌 10을 기대한다. 이들이 온갖 것들을 견디고 부수는 늠름한 정치를 오랜 세월 지켜보고 싶다. 차정원의 말처럼 이 나라엔 쉽게 뭘 얻는 여자는 없으니까.

<오오마메다 토와코와 3명의 전남편>(2021)

이상해서 성가시고, 이상해서 사랑하는

까탈스럽다거나 예민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이 세상은 싫은 것들로 꽉 차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은 것을 꼽자면… 인간이다. 인간은 귀찮고, 이해 불가능하며, 무섭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감정이 외로움으로 전환될 때,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고 싶어진다. 이상해서 궁금하고, 웃기고, 귀엽고, 걱정하고,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는 상처받는다.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에는 이렇게 이상해서 성가시고, 이상해서 사랑하는 역설적 인간 군상들이 늘 등장한다.

그는 2010년 이후로 방치당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유괴를 결심하는 교사(<마더>), 가해자의 가족과 피해자의 가족으로 살며 자신을 숨겨왔지만 서로에게서 살아갈 의지를 얻는 두 남녀(<그래도 살아간다>), 미혼모로 살아간다는 것과 여성혐오적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것, 그럼에도 연대한다는 것(<Woman>, <문제있는 레스토랑>), 결혼과 가족의 존재에 관한 근원적 질문(<최고의 이혼>), 비밀을 간직한 네 사람의 음악 재도전기(<콰르텟>), 버거운 도쿄 생활을 견디는 젊은 청춘들(<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울어버릴 것 같아>) 등등 살고자 하는 소외된 이들을 그리며 삶과 사회를 조명하는 드라마를 써왔다.

2018년 방영한 NHK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에서 사카모토 유지는 자신이 이러한 작품을 쓰는 이유에 대해 “활력이 10에서 100이 되는 작품은 아마 많이 있겠지만 역시 저는 마이너스에 있는 사람이 적어도 0이 되는, -5에서 -3 정도가 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라고 답한다. 그러고는 “정말로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건 그 사람이 평소에 생활하는 가운데에서 나오는 미의식”이라고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가 창조한 세계는 언제든 주변에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들로 채워진다.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다가도 침묵하고, 끝에 가서는 부끄러움을 무릅쓸 용기를 내보기도 하는 어쩐지 좀 미심쩍고 어설픈 캐릭터가 일상을 살아내며 만들어내는 노곤하지만 희망찬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다.

산뜻하게 혼자가 되자

사카모토 유지의 최신작 <오오마메다 토와코와 3명의 전남편>은 앞선 작품과 결을 같이 하지만, 마이너스에서 제로를 향해가는 기존 작품과는 다르게 이미 +30 정도 되는 인물이 등장하는 훨씬 밝고 코믹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방충망이 빠지며 시작된다. 자꾸만 빠지는 방충망을 핑계로 누군가에게 다시 기대보고 싶어진 ‘오오마메다 토와코’. 토와코에게 외로움은 침대에 누운 채로 깜박하고 끄지 못한 주방 환풍기를 ‘일어나서 끌까, 그냥 참고 잘까’ 고민하는 귀찮음으로부터 촉발되는 감정이다.

3번 결혼하고 3번 이혼한 토와코는 매사 덜렁대고 어딘가 헐렁하지만, 원하는 것을 자신의 손으로 일궈낼 줄 아는 사람이다. 최근 건설회사 ‘시로쿠마 하우징’의 사장으로 승진했다. 곁에는 함께 사는 중학생 딸 ‘우타’가 있고, 명랑만화 주인공 같은 친구 ‘카고메’가 있다. 전 남편들은 안경만 썼다 뿐 체형이며 성격, 직업조차도 모두 다른데, 시즌 1, 여유로운 고양이 같지만 좀처럼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는 남자 ‘다나카 핫사쿠’. 시즌 2, 간장 종지만큼 속이 좁지만 로맨틱한 남자 ‘사토 카타로’. 시즌 3, 불평 많고 자기애가 강하지만 천진한 구석이 있는 남자 ‘나카무라 신신’까지 세 남편은 여전히 토와코 주위를 맴돌며 애정을 갈구한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1:3 관계가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라거나, 한 여성이 리더로 무사히 안착하는 단순한 오피스 드라마 정도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저 여러 날의 하루가 나열되어 도통 압축할 수 없는, 토와코의, 토와코에 의한, 토와코를 위한 이야기일 뿐.

“신발 안에 들어간 돌멩이를 신발을 벗지 않고 꺼내려고 애쓰는 오오마메다 토와코. 체조 동작이 남들과 맞지 않는 오오마메다 토와코. 축하하는 중에 구내염이 생겼다는 걸 알아챈 오오마메다 토와코” 같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의 내레이션이 극의 전반을 설명하고, 주인공 토와코를 연기한 ‘마츠 다카코’가 카메라를 향해 제목을 읊는 것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이 독특한 작품을 어설프게 정의하자면, 마치 양말의 구멍 같은 외로움이라는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생활의 한 부분이 석연치 않고, 상실마저 경험한 사람들의 버둥거림이 환대의 코미디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텅 빈 구멍까지 껴안는 태도가 우리를 매일 조금씩 성숙한 어른의 세계로 이끈다는 것을 깨우쳐 삶을 긍정하는 것.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어떤 날의 토와코처럼 부스러기를 마구 흘리고 있을지라도 또 가끔은 쓸쓸할지라도, ‘미련은 미련대로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안고, 산뜻하게 혼자가 되자’는 결심에 비로소 도착하게 한다.

한편으로 나는 요즘 들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사카모토 유지의 대사를 떠올리고는 한다. “울면서 밥을 먹어본 사람은 살아갈 수 있어요”라거나, “살아있는 자신을 나무라면 안 돼”라거나,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아”라거나, “애정과 생활은 늘 충돌해서, 뭐랄까. 제가 사는 동안 품고 가야 할 성가신 병이에요”라거나, “즐거운 채로 불안하고, 불안한 채로 즐거워” 같은 말들. 툭 내뱉은 말이지만, 아름다운 아이러니로 가득 찬 말들, 몰랐던 나를 곧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말들. 그 파장이 너무 커서 괴롭지만 너무나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그런 말들을.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
OTT wavve
연출 윤성호
극본 김홍기, 박누리, 최성진, 강지현, 윤성호
출연 김성령, 백현진, 배해선, 이학주 등
시놉시스
갑작스레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된 금메달리스트 출신 셀럽 ‘정은’. 남편인 정치평론가 ‘성남’의 납치 사건을 맞닥뜨려 동분서주하는 1주일 사이 엉뚱하게도 대선 잠룡이 되어가고, 덩달아 대한민국의 정세도 격변하는데…

 <오오마메다 토와코와 3명의 전 남편>(2021)
OTT wavve
원제 大豆田とわ子と三人の元夫
연출 카즈히토 나카에, 이케다 치히로
극본 사카모토 유지
출연 마츠 다카코, 마츠다 류헤이, 카쿠타 아키히로, 오카다 마사키, 이치카와 미카코 등
시놉시스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한 오오마메다 토와코가 여전히 전 남편들과 얽히며 하루하루를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