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월간 윤종신] Repair 10월호 ‘Slow Starter’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아페퍼 이희정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간략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페퍼(Apepper)’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이희정입니다. 시적 이미지에 대해 고민하는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게 편합니다. 디자인 작업에 착수할 때 글 원고 혹은 음원 상태의 콘텐츠를 받게 되는데, 소재에 억지를 더하지 않고 시적인 시각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을 고민하며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 2021 [월간 윤종신] 리페어 10월호 ‘Slow Starter’ 앨범 커버 아티스트로 선정되셨는데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우선은 [월간 윤종신]의 한 구간을 담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월간 윤종신]의 음악들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이고, 특히 2012-2013년 즈음의 앨범 커버 작업들을 예뻐하기도 했고요. 노래들 중에서는 ‘몰린’과 ‘말꼬리’, ‘굿바이’, ‘나쁜’을 좋아하는데, 무심하게 차곡차곡 쌓다가 팝콘처럼 터지는 아름다운 서정성을 좋아하거든요. 이번 앨범 커버 작업 제안을 받게 되어 ‘지금이구나(?)’ 했습니다. 정말 기쁘고 반가웠어요.

– 먼저 이번 노래를 듣고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인상에 대한 질문이 있다는 게 재미있네요. 평소 작업할 때에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인상을 크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럼에도 유독 이번 ‘Slow Starter’는 심상으로 맺히지 않고, 상황에 놓인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노래였어요. 흘러가는 세상에서 혼자 멈춘 듯한 인고의 시간을 응원하는 곡이기도 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 작업을 하시면서 어떠한 생각과 의도를 반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음원만 받았을 때에는 ‘끝이 뭉툭하고 움직임이 느린 펜 레터링을 만들자’ 정도로 분위기만 가늠한 채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는데요. 이후에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샘플을 받아본 뒤에는 작업 방향이 빠르게 잡혔습니다. 이 노래에 중명도의 어스름한 톤이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반적으로 화면이 옅은 빛을 머금고 산란하는 점이 참 좋더라구요. 느린 셔터스피드로 포착한 빛 잔상처럼 살짝 번진 글자를 길게 흘려써서 얹어보면서 작업이 금방 진척되었어요.

– 특별히 어려웠던 점 혹은 즐거웠던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애니메이션 스틸컷을 가지고 디자인을 진행해보기는 처음이었는데, 표정이 적은 인물을 정사각 안에 배치해 서사를 만드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어요. 디자인에 사용하기 가장 알맞은 프레임을 찾고, 인물의 위치와 시선이 닿는 곳을 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글자의 형태를 만들어 얹어나가는 과정이 공연 포스터를 만드는 느낌이었달까요. 정지된 화면을 자르고 다듬으면서 조금 더 깊은 정서가 생기는 것을 보기도 했구요. 이번 [월간 윤종신]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의 작업이었지만 즐거웠어요.

– 작업 관련해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나 영역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마음 한 켠에 잘 완성된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잘 완성되었다는 미감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지나가다 마음을 끄는 노래가 들리면 수집하고, 잘 만들어진 책이 보이면 모으고 있어요. 작업의 재료가 될 만한 질감을 모으고 드로잉을 해두기도 하고요. 주변 지인들이 가지고 있던 원고를 작은 책으로 만들기도 해요. 수집하고 만들어가며 제 기준을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 앞으로의 작업/활동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아마 지금처럼 계속 저에게 주어지는 작업들을 해나갈 거에요. 작업들 사이에 제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알맞게 안배해, 디자인을 지치지 않고 하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에요. 편안하게 함께 흘러갈 수 있는 작업들이 저에게 더욱 더 찾아와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2019-2021 디지털 앨범 커버 디자인
성내도서관의 북큐레이션을 위한 책 <성내의 서재>

<보안책방 리딩랩 아트/북>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