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홍콩영화로부터
천년의 이상형, 내 사랑 금성무
막무가내인 청년이 있다. 90년대 영화 속에서 그는 아주 많은 순간 순수하게 미쳐있다. 이 남자는 연인에게 차인 후에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고 하더니 유통기한이 다 된 통조림을 꾸역구역 배 속에 집어넣는다.(<중경삼림>)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먹고 말을 잃은 남자는 남의 가게에 무단침임해 부산스럽고 요란한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강매한다.(<타락천사>) 그는 짝사랑하는 상대 앞에서 고백을 망설이는 피아노 조율사이자 귀여운 상상력을 지닌 동화작가이다.(<친니친니>) 남자는 사랑밖에 모르는 하늘에서 불시착한 천사다.(<라벤더>)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몽유병 환자다. 이들은 정처없이 배회하고 갈팡질팡한다.(<첫사랑>)
4월은 장국영의 달이기도 하여서, 내게 매년 이 즈음은 홍콩영화를 다시 복기하는 시기이다. 어쩌다 보니 광둥어의 리듬에 빠져, 아니, 실은 빛나는 홍콩영화배우의 얼굴에 빠져, 최근에는 거의 매일 밤 옛 홍콩영화를 하나하나 다시 보게 됐다. 특히나 나에게 홍콩영화란 천년의 이상형 금성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금성무가 출연한 90년대 영화를 다시 몰아보고 있다.
새까맣게 짙은 눈썹, 입술을 살짝 물거나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 옅게 패이는 보조개, 장난끼 많아 보이는 올라간 입꼬리, 쌍꺼풀 없는 긴 눈, 단단하고 날쌘 몸짓… 청년 시절의 금성무는 정치나 비정한 세계와도 무관해 보이는 어리숙한 얼굴을 하고, 홍콩인도ㅡ 일본인도, 대만인도 아닌 무국적의 정체성으로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어디선가 그렇게 살아가는 청년이었던 것처럼 연기해낸다. 그가 눈동자를 도르륵 굴릴 때 내 마음도 도르륵 돌아간다.
그렇게 만난 영화 중 하나가 <천애해각: 영원한 사랑>―몇몇 OTT와 포털 사이트에서는 <영원한 사랑>으로 찾을 수 있다―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무엇이든 찾아주는 한없이 다정한 심부름센터 직원인 몽골 사람 ‘나구충(아충)’ 역을 맡아, 백혈병에 걸린 ‘아림’의 희망이자 사랑하는 사람 ‘아덕’을 찾아주기로 한다. 영화는 멜로 영화의 클리셰를 서서히 따라가지만, 또 한편으로 성장을 이야기하면서 환상과 도피를 끼워 넣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죽음을 앞두고 동경하는 스코틀랜드 ‘천애해각’에 가려는 아림은 아충을 만나 살아보기로 마음먹는다. 이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기적을 쫓는 사람들의 의심 없이 순수한 마음을 요즘 영화에서는 만나기 어려우니까. 진혜림을 바라보며 턱을 괴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금성무의 얼굴을 보는 일만으로도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기적을 믿어보고 싶어진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보영’이 ‘아휘’에게 말한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왕가위 영화가 늘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영화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그중 주연을 맡은 두 배우의 일화를 애정한다. 장국영이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조위가 아직 연결되는 장국영의 음성사서함에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야기 말이다.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을 예언하고도 시작하는 사랑은 전반적으로 눅눅하고, 극적인 순간 앞에서는 치졸하며,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서글프다. 하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예견할 수 없는 일을 마주했을 때, 어떤 감정은 그 자리에서 석고처럼 새하얗게 굳어버리고 만다. 전화기의 주인이 부재하기에 영원히 가닿지 못할 메시지처럼, 그렇게 이 영화는 홍콩의 한 시대와 이별하는 쓸쓸한 영화로 남아있다.
프루트 챈 감독의 97년 작 <메이드 인 홍콩>을 봤을 때 처음 들었던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그리고 점점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이 영화는 자투리 필름―8만 자, 그러니까 2만 6,400m쯤 된다고 한다―을 모아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해 만든, 진정성을 빼놓고서는 절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영화다. 홍콩 반환 이후의 혼란과 소외감은 청년들의 방황과 불안, 병듦, 범죄와 폭력, 그리고 죽음으로 치환된다. 길거리를 달리며 거칠게 흔들리는 화면에 우울감 또는 열패감, 치기 어린 감각이 스민다. 그리고 세 청춘 ‘차우’, ‘아롱’, ‘핑’이 안개 자욱한 공동묘지에서 노닐 때, 이 영화가 당도하려는 지점에 가까스로 멈춰 선다. 살아있지 않은 것, 이미 사라진 것, 반환 이전의 홍콩에.
익숙해지지 않으려면
그리고 다시, 내가 가봤던 홍콩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작년 7월, 국가보안법이 시행됐다. 최근에는 친중성향 인사가 정계에 진출하기 유리한 방식으로 선거법이 개편됐다. 조슈아 웡을 비롯한 ‘우산혁명’의 주역들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97년에 세상 밖으로 나온 위의 두 영화를 홍콩영화를 탐험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삼기로 했는데, 이제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마지막 해를 가리키기도 하는 SF 영화 <2046>으로 마무리할 수 없게 되었다. 홍콩영화의 매혹과 낭만을 양껏 만끽한 다음에 비로소 찾아오는 어설픈 무력감 때문이다. 그때마다 우산혁명 10년 후인 2025년을 상상한 옴니버스 영화 <10년>을 만났다.
영화 <10년>은 신인 감독들이 연출한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삼합회를 고용해 정치인 피습 사건을 꾸며내는 고위 공직자들의 회의를 비추는 <엑스트라>, 세상 모든 것을 박제해 표본으로 만드는 종말론자 부부가 자신의 신체마저 표본으로 만들어내려는 몸부림을 수집한 <종말의 계절>, 광둥어가 홍콩의 방언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표준 중국어인 보통화를 익히지 못해 영업에 곤란함을 겪는 택시기사의 이야기 <방언>, 증오로 권력을 유지하는 중국 공산당에 대항해 투쟁을 이어가다 분신한 젊은이와 그를 따라 분신한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를 겪은 노인을 조명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분신자살>, ‘현지’를 말살하기 위해 홍콩의 마지막 양계장마저 닫은 상황에서 금지와 검열의 감시에서 벗어나려는 소시민들의 일상을 다룬 <현지 달걀>까지. 근미래 홍콩의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담은 단편 다섯 편은 미래의 희망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관객을 한없이 어둡고 적막하고 암울한 동굴로 이끈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도시는 민주화 운동으로 다시 세워진 도시다. 매해 5월이면 도청 앞으로, 망월동 묘지로 체험학습을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살아남은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와 정의를 배웠다. 5월이면 그 나날들의 사진과 영상과 신문 자료를 빼곡히 봤다. 버스 위에서 태극기를 흔들던 사람이, 군중 속 누군가가, 수레에 실린 사람이, 빼곡히 놓인 관들 사이의 유가족과 의료진이 친구이고 선배이고 동네 사람인 도시의 학교에는 국가유공자의 가족이 언제나 여럿 있었다. 하지만 광주 밖을 나서자 모욕과 왜곡과 혐오는 도처에 깔려 있었고, 서울에서 나는 모멸감을 배웠다. 그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안다는 이유로 같은 대학 선배에게 조롱을 당한 일 같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들. 울분과 두려움이 함께 자라났다.
그래서 나는 홍콩영화의 낭만을 마음 편히 경유할 수 없게 되었다. 생사를 건 투쟁이 지나간 도시에서 자라, 생사를 걸었던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며 그들의 심정을 직간접적으로 체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이면 이 영화를 떠올린다. 내가 살고 있는 아시아는 오늘도 여전히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를 향한 생존으로 치열하다. 홍콩 이공대 진압 뒤 남겨진 글귀, “BE AWARE or BE NEXT!”, 미얀마 시위대의 세 손가락 경례, 신장 위구르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인권 탄압을 어떻게든 폭로하려는 사람들, 코로나 확산 이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아시안을 향한 증오 범죄에 대항하는 물결까지.
영화 <10년>의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절대 익숙해지지 마요. 우리 세대가 익숙해진 바람에 당신들이 이렇게 사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대사도 나온다. “어떻게 존재하는 걸 금지하려고 하지?”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존재를 존재로 인식하기 위해, 현실에서는 우울한 상상력에 절대 도달하지 않기 위해, 여기, 영화가 있다.
天涯海角: Lost And Found
OTT 왓챠, 웨이브, 극영화
감독 이지의
주연 금성무, 진혜림, 왕민덕
시놉시스
백혈병에 걸렸지만 치료를 거부하던 아림은 우연히 물건이나 사람을 찾아주는 일을 하는 아충을 만난다. 아림은 동경하던 천애해각에 가기 위해 그곳에 대해 알려줬던 스코트랜드인 아덕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TEN YEARS
OTT Netflix, 극영화
감독 주문걸, 곽진, 주관위, 오가량, 황비붕
출연 황정, 이사화, 류호지, 양건평, 오조헌, 요계지
시놉시스
때는 2025년의 홍콩. 중국 본토의 통제가 극에 달하면서, 서로를 감시하고 기계처럼 순종해야 살아남는 세상이 왔다. 귀를 닫고 입에 재갈을 물린 디스토피아에서 자유와 인권을 말하는 저들은 처량한 몽상가인가. 정녕 위험한 반역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