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Eerie With Julie Doiron, [Enduring the Waves], 2019

나는 매일 음악을 듣는다. 아주 열심히 듣는다. 피치포크와 NPR Music에서 새로 발매된 앨범을 체크하고, 기존의 좋아하던 음악가와 비슷하거나 관계가 있는 앨범이 있는지 찾아내기 위해, 혹은 아주 새로운 음악을 찾아내길 바라면서 유튜브와 스포티파이를 끝도 없이 항해하고는 한다. 그렇게 해서 들은 음악 중 열 곡에서 열 세곡 정도를 골라 매주 금요일 여섯 시에 사람들에게 메일로 보낸다. 이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다. 더는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장소에서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사라진 공간을 들먹여야 하는 때가 온다. 홍대에서 음악을 시작하고 약 삼 년 쯤 됐을 무렵 내게는 음악가 친구들과 자주 공연을 보러오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고, 서로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기 시작했고, 공연이 끝나면 가끔 맥주를 한잔 하기도 했다. 맥주를 마시는 곳은 주로 정해져 있었다. 거기에 가면 언제나 친구들이 한둘쯤은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카페 안을 빙 둘러보고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에 자연스레 합석하거나 작은 바 자리에 앉아 친구들이 약속 없이 오기를 기다리며 카페 직원과 시시덕거리고는 했다. 영업시간은 대략 오후 한 시에서 새벽 한 시 정도. 언제나 칼같이 정확하지는 않았다.
그 곳에서는 언제나 우리들의 음악이, 혹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음악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단골이라는 특혜를 받고 자주 스피커를 독차지하고는 했다. 누군가가 ‘이 노래 뭐야? 진짜 좋다.’ 그렇게 말하기를 기다리면서.

하지만 이제 그 카페는 없고, 갈 곳을 잃은 우리는 떠돌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곳은 죽치고 앉아 끊임없이 우리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 J와 L이 문래동에 촬영 스튜디오 겸 주거공간을 열었다. 나는 막연하게 둘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둘이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화장실 공사를 한, 널찍하고 창문이 큰 공간이 탐이 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작정 둘에게 나를 초대하라고 말했고 친근한 두 사람은 흔쾌히 나의 초대 요구를 받아들였다. 셋 다 배불리 먹고 마셨을 무렵 두 사람이 의기양양하게 스튜디오의 자랑거리를 보여주었다. 그건 빔프로젝터였다. 보통 호라이즌으로 쓰는 크고 흰 벽에 커다랗게 화면을 비춘 다음 그들은 이렇게 말했거나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 이제 음악 들을까요?” 우리는 밤늦게까지 좋아하는 라이브 영상이니 뮤직비디오니 하는 것을 경쟁적으로 플레이하며 큰 볼륨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남몰래 다짐했다. 여기서 자주 놀아야겠어.

우리는 J와 L의 스튜디오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저녁 여섯 시면 주변 철공소들이 모두 문을 닫는 어두컴컴한 문래동 골목은 음악을 크게 들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공간의 계약 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J와 L이 스튜디오를 정리한 뒤 귀촌하기로 결심하면서 그 시대도 끝이 나버렸다. 아쉽지만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며 우리는 다시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스튜디오에 모여 놀았을 때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장소가 뭐가 중요해, 그냥 모일 수 있기만 하면 되지.
그리고 대역병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모여 음악을 들었던 때는 2020년 초여름이다. 총 열 팀의 음악가가 참여하기로 한 공연을 진행할지 말지에 대한 회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친구가 일하는 술집에 모였다. 온라인 공연으로 진행하자, 소수의 관객만 받고 하자, 그런 의견을 나누다 보니 결국 이 공연을 억지로 진행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착했다. 마음이 헛헛했다. 2019년에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던 공연이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에는. 기껏 오랜만에 모였는데 칙칙하네. 그렇게 생각했다. 침울한 결론에 다다른 우리가 시무룩한 상태로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제안했다. 우리 최근에 발견한 ‘비장의 노래’ 한 곡씩 트는 거 어때요. 갑자기 조금 활기가 돌았다. 다들 자신의 재생목록을 살펴보며 무슨 노래를 틀지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노래, Mount Eerie와 Julie Doiron의 ‘Enduring The Waves’를 틀었다. 볼륨을 조금만 더 올려줘. 아직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는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노래가 재생되는 동안 아주 조용했다. 함께 음악을 크게 듣는 건 정말 좋아. 옆에 앉아있던 친구에게 내가 속삭였다.

나무로 된 바의 결을 손가락으로 쓸며, 귀를 울리는 커다란 음악 속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것들을,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사라져 갈 것들을 예감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쩐지 아주 오래 남을 거라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마음속에도 아주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어느 날 우리가 문득 떠올리고 그 날도 우리는 음악을 크게 들었지 하고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함께 음악을 크게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