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월간 윤종신>은 매월 새로운 작업자를 초빙해 앨범 아트를 제작한다. 참여자는 공모를 통해 선정하며 공식 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수시로 지원을 받고 있다. 1월호 ‘잘 했어요(with 정준일)’의 앨범 커버는 부산에 거주하며 회화 작업을 하는 최민국(@choimingook) 작가가 맡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은은하면서도 따뜻한 그림을 그려온 작가는 이번에는 한때 가장 가까웠으나 지금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떤 연인의 ‘거리’를 표현했다. 편집팀이 최민국 작가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2021 <월간 윤종신> Repair 1월호 ‘잘 했어요’(with 정준일)의 앨범 커버 아티스트로 선정되셨는데요. 연락을 받고 어떠셨나요?

대단히 정말 엄청 기뻤습니다. 오랫동안 좋아한 가수의 음원 커버 작업을 하게 되다니 벅차고 설렜어요. 얼떨떨하고 멍하기도 했고요. 아내와 방방 뛰기도 했어요! 평소 느린 작업을 하다 보니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두는데, 나중에 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더라고요. 다시 통화를 해보니 제가 선정되었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때는 아무 감정이 없었는데, 생각할수록 형용할 수 없는 새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작업이 마무리되었는데도 정말 행복하고 얼떨떨합니다.

– 1월호는 정준일이 재해석한 ‘잘 했어요’인데요. 노래를 듣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원곡과 리페어곡 모두 들어보셨을 텐데 두 곡에서 어떤 감상을 받으셨는지도 궁금하고요.

우선 곡을 다른 분들보다 먼저 들어볼 수 있다는 게 특별했어요. 느낌이 좋은 건 당연했고 과거의 연애 기억들도 떠올랐죠. (아내가 보고 뭐라고 하진 않을까 싶지만 솔직하게 적어야 할 것 같아서…) 이제 오랜 시간 지나 잊혔던 제 마음이 노랫말로 인해 다시 보였어요. 그땐 설명할 수 없었던 불투명한 감정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 내 마음이 그런 거였구나’ 싶기도 하고요. 적막하면서도 근사한 기분이었요. 후련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먼저 듣다 보니 더 풍부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리페어곡은 원곡과 가사가 조금 다른데요.(“이젠 날 좀 사랑하려 해”, “남은 내 사람들도 나도 모두 잘 살 테니까 건강해요”) 곡의 뉘앙스는 비슷하지만 달라진 가사 때문인지 저에게는 두 곡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어요. 엉뚱할 수 있지만 원곡은 ‘직선 같은 곡선’ 같고, 리페어곡은 ‘곡선 같은 직선’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물론 두 곡 모두 그저 좋았고요.

– 이번 커버는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자연스럽게 ‘거리’를 염두에 두게 되었어요. 작년과 올해는 계속 ‘거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요. 팬데믹으로 인해 거리를 두는 경험은 태어나 처음 해본 것이니까요. 여전히 당황스럽고 두려운 한편, 이제 거리 두기는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죠.
저는 사랑 노래도 결국에는 물리적 거리에 대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 만남과 이별은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또 멀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한때는 가장 가까운, 가깝다는 말도 무색할 만큼 맞닿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시는 못 보게 되어서 기억 속의 타인이 되는 사이. 어딘가에 있지만 다시는 못 보는 상황. 정말 슬프지 않나요?
‘잘 했어요’를 들으면서 그런 상황을 생각했어요. 어느 한쪽은 사라지고, 어느 한쪽은 나아가는 서로의 방향이 달라지는 상황. 이해도 안 되고, 형용할 수 없는 질감의 기억들. 캔버스 속 남자는 반쯤 걸터앉아 사라지고, 남인 듯 일행인 듯 적당한 거리에 있는 여자는 다른 여백으로 나아가는 그림.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 oil on canvas, 45.5 × 65 cm, 2020
남자와 여자, oil on canvas, 30 x 60 cm, 2015

– 작업하시면서 특별히 즐거웠던 점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일단 노래와 조화로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작업했고요. <월간 윤종신>의 음악들을 모두 다시 듣고 또 그동안의 커버들도 확인하면서 어떤 차이점을 만들려고 했어요. 가능하면 저의 그림도 이 곡을 통해서 뭔가 새로워지길 기대했고요. 특별한 장소 속에 녹아들어 간다는 기분이 무척 좋았고 설렜습니다. 사실 팬이라면 서명만 받아도 기분이 좋은데 이렇게 앨범에 참여까지 하다니… 상상도 못 해본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이번 그림 속 바다는 저에게는 선명하게 남을 것 같아요.

– 캘리그래피 작업은 김경연(@callixillust)작가님이 참여해주셨는데요. 김경연 작가님과 함께 작업하시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서체로 구성해서 텍스트가 잘 드러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곡과 그림 모두와 조화로울지 고민했어요. 작업 관련 메일을 받고 <월간 윤종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른 커버들을 모두 확인했는데, 그동안 없었던 느낌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시각이 담긴 지점을 찾아보려고 했고요. 참고할만한 다양한 자료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또 화자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잘했어요’라는 가사의 뉘앙스를 담아보려고도 했고요. (캘리그라피를 자세히 보면 사람의 옆모습과 비슷한 형상이 있어요.)

– 평소 작가님께서 선호하시는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작가님만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 스타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작업 과정은 간단합니다. 심심했으면 좋겠다, 난로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고요. 저는 가볍고 은은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저만의 질감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유화를 되도록 얇게 펴고, 종이로 닦아내고. 물감이 마른 후 다시 투명한 다른 물감을 올리고 닦아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 요즘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그런 그림을 그리려면 어떤 소재가 좋을지, 어떤 방식이 좋을지 고민해요. 슬프면 위안이 되고, 우울하면 기쁨이 되고, 외로우면 공감이 되는, 어떤 방식으로든 제 그림이 보는 사람들에게 유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보리 멜로디, oil on canvas, 19 × 33.2 cm, 2020
여행의 오후 32℃, oil on canvas, 162.2 × 130.3 cm, 2019

– 최근 작가님의 이슈나 관심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넷플릭스죠! 영화나 드라마를 워낙 좋아해서 최근 넷플릭스로 본 작품들이 정말 많은데, 요즘은 뒤늦게 <워킹데드>에 홀딱 빠져서 정주행 중입니다. 내가 왜 이걸 이제서야 본 건가 싶어요. 처음에는 좀비가 당황스럽고 두렵다가 나중에 일상이 되어가는데, 그런 상황이 꼭 요즘 같기도 하더라고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여러 군상들 가운데 나는 그중에서 어떤 사람에 가까운지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요. <퀸스 갬빗>도 최고였어요. 아마도 제 삶은 넷플릭스 결제 전과 후로 나누어도 될 것 같아요.

– 앞으로의 작업/활동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올해 6월 1일부터 6월 6일까지 종로구 윤보선길에 있는 사이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서울에서는 첫 개인전이라 무척 뜻깊어요. 전시 제목은 ‘아이보리 공기’입니다. 비누 같기도 하고, 버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따뜻한 그림을 전시하려고 합니다.
제 그림 속의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인데요. 멀리서 보면 하나의 점과 같은, 얼굴도 모르고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요. 하지만 저는 그들 모두가 가상의 인물이어도 생명과 감정이 있는 인격체라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고 또 서로를 잘 볼 수도 없지만 사랑과 감동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아름다움과 생기로움을 앞으로도 그려서 나누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월간 윤종신> 구독자 여러분에게 인사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월간 윤종신> 구독자 여러분, 최민국입니다. 이번 ‘잘 했어요’ 앨범 커버를 통해 처음 인사드립니다. 추운 계절, ‘잘 했어요’ 노래와 그림으로 함께 조금이라도 따뜻한 위안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