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쥬>(2000)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를 만나기 직전, 운디네(폴라 비어)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연인 요하네스(제이콥 맛쉔즈)와 함께 오던 카페를 찾았다. 30분 뒤에 돌아올 테니 기다렸다가 다시 날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당부했지만 요하네스는 이미 떠나고 없다. 빈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운디네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고개를 돌려보지만 눈에 보이는 건 카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조 속 작은 잠수부 인형뿐이다. 그리고 운디네를 뒤 따라온 산업잠수부 크리스토프가 운디네에게 말을 걸자마자, 수조는 산산조각이 나고 가득 차 있던 물이 두 사람을 덮친다.

운디네가 크리스토프와 만나고 사랑하는 과정은 온통 예언적 울림과 반복으로 가득하다. 운디네는 크리스토프를 만나기도 전에 잠수부 인형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크리스토프가 운디네의 배에 박힌 깨진 유리조각들을 뽑아주는 장면은 크리스토프가 함께 잠수를 즐기다가 의식을 잃은 운디네에게 CPR을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크리스토프가 선물해 준 잠수부 인형은 운디네와 직장동료의 부주의로 인해 다리가 깨지는데, 뒤이어 크리스토프는 잠수 중에 다리가 끼어 올라오지 못하는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운디네가 마침내 제 진심이 어디 있는지 온전히 다 말할 용기를 내게 해준 그 한 통의 전화는 알고 보니 불가능한 전화였다.

운디네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저주라도 있는 걸까? 설마. 운디네 전승에서 따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운디네는 연금술 속 물의 정령 운디네가 아니다. 그보다는 운디네가 경험하는 사랑의 이상과 좌절이 사실 무척 흔한 이야기라는 설명이 조금 더 합리적일 것이다. 우리는 뻔한 핑계로 사랑을 잃고, 시시한 이유로 서로를 의심하고,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이별하곤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지긋지긋해하면서도 다음 사랑을 만나면 불행 따윈 없을 거라는 기대를 품은 채 다시 사랑의 계절 속으로 뛰어든다. 깨진 수조도 말끔하게 복구되었고, 유리조각이 박혔던 흉터도 시간이 지나 아물었으며, 잠수부 인형의 다리도 순간접착제로 감쪽같이 붙여낸 것처럼, 이번만큼은 그런 고난을 다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감쪽같이 붙여낸 것들이라고 해서 예전과 같을 순 없다는 것을. 운디네는 21세기에 다시 복원 중인 베를린 궁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궁이 18세기에 지어졌다가 20세기에 허물어진 궁과 본질적으로 같은 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교묘한 기만이라고. 상처를 감쪽같이 가릴 수는 있어도 상처 입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입은 상처는 명확한 흔적을 남긴다. 운디네가 더 이상 단골카페에 출입할 수 없듯, 다시 마주친 요하네스를 용서할 수 없듯. 그러니 사랑이 어떻게 진행될지 뻔히 알면서도 다시 뛰어드는 건, 과거에 얻어 아직도 욱신거리는 옛 상처들을 안고도 그 모든 것의 반복을 감수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예정된 실패에 맞서는 무모함, 운디네와 크리스토프의 연애를 가득 메운 예언적 울림은, 어쩌면 그 무모한 사랑의 영겁회귀성에 대한 은유인지 모른다.

<수쥬>(2000)

가능하면 함께 구해서 보기 쉬운 영화로 짝을 지어주는 게 나 혼자 지켜온 이 코너의 원칙이지만, 이번만큼은 부득이하게 조금 구하기 어려운 영화로 <운디네>의 짝을 지어주기로 한다. <여름궁전>(2006)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중국의 ‘제6세대’ 감독 로예의 영화 <수쥬>(2000)가 그 작품이다. 영화의 내레이터인 ‘나’(1인칭 시점 카메라로, 감독 로예가 직접 목소리 연기를 했다.)는 상하이에서 영상을 촬영해주는 비디오 촬영기사다. 결혼식을 비롯해 각종 행사를 촬영해주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는 ‘나’는, 한 술집에서 손님들의 눈요기 용으로 설치해 둔 대형 수조에서 금발 가발을 쓰고 인어 복장을 하고 쇼를 하는 쇼걸 메메이(저우쉰)를 만난다. 메메이는 ‘나’에게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수쥬 강의 인어 전설을 들려준다.

오토바이로 여기저기 빠르게 물건을 나르는 배달부 마르다(지아훙성)는 어느 날 부잣집 소녀 모우단(저우쉰. 1인 2역)을 ‘배달’해주는 일을 맡는다. 만남이 반복되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만, 마르다가 몸 담고 있던 범죄조직은 마르다에게 모우단을 납치해 몸값을 뜯어내자는 제안을 건넨다. 제안을 뿌리치지 못한 마르다에게 실망한 모우단은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이 변했음에 슬퍼하며 수쥬 강에 몸을 던졌고, 모우단을 잃은 슬픔에 정신을 잃은 마르다는 모우단을 찾아 상하이의 거리를 헤맨다는, 그런 이야기. 영화의 오프닝 씬에서, 메메이는 ‘나’에게 당신 또한 자신이 갑자기 사라지면 마르다가 그랬던 것처럼 평생 동안 자신을 찾아 헤맬 거냐고 다짐받듯 묻는다. ‘나’는 그러겠노라 대꾸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별 진심이 없다. 그런 ‘나’의 말에 메메이는 책망하듯 잘라 답한다. “거짓말.”

‘나’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허공을 떠다니는 도시괴담을 진지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으니까. 문제는 마르다가 이야기 속에서 뛰쳐나와 현실 속의 메메이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마르다는 강물에 뛰어들기 전 ‘인어가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모우단이 바로 지금 인어 쇼를 하고 있는 메메이일 것이라 믿고, 모우단의 흔적을 찾겠다며 메메이에게 집착한다. 메메이는 자신은 모우단이 아니라고 마르다를 설득하면서도, 자꾸만 자신과 ‘나’의 사랑을 모우단과 마르다가 나눈 사랑에 비추어 보게 된다. 모우단은 자신이 생각했던 무결한 사랑이 무너지자 목숨을 버렸고, 마르다는 자신의 실수로 이미 깨진 사랑을 다시 이어 붙일 수 있다는 광기에 차서 평생을 모우단을 찾는데 소모한다. 아마 메메이가 욕망한 건 ‘영원한 사랑’이라는 불가능한 이상 상태가 아니라,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그 이상 상태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평생을 헤매는 모우단과 마르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온전히 이상 속에서 산화하는 전설적인 인물들이라 생각했던 마르다와 모우단의 시신이 수쥬 강에서 발견된 이후, 메메이는 ‘나를 찾아보라’는 쪽지를 ‘나’에게 남긴 채 자취를 감춘다. 메메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온전한 사랑 같은 건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진심이 한 자락도 담기지 않은 말투로 건성건성 답한 ‘나’는 자신이 사라져도 자신을 찾아 헤매지 않을 거란 사실을. 과연 오프닝에서 평생 메메이를 찾아다닐 거라 답했던 ‘나’는, 영화의 결말부에서 메메이를 찾아 헤매겠다는 다짐 대신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에 자신은 그러지 않을 것이며, 술 한잔을 삼키고 눈을 감은 채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릴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나’의 목소리는 떨리고, 그가 손에 쥔 카메라는 비틀거리다 넘어진다. ‘나’는 메메이를 찾아 헤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말을 알면서도, 그는 다시 자신이 투신할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다릴 것이다.

늘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는 걸 알면서도 무모하게 덤벼드는 어리석은 영겁회귀에 대해 쓰고 있자니, 문득 내가 하는 일 또한 비슷한 속성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 칼럼을 쓰면서 나는 매번 내가 접한 영화의 아름다움을 언어로 고스란히 옮기기 위해 발버둥쳤는데, 칼럼을 함께 해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그 목표엔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시 다음 마감에 덤벼 들었던 건, 언젠가는 예정된 실패를 벗어나 영화를 향한 내 사랑을 온전히 담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 덕이었다. 비록 그 희망을 이룬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같은 지면이 다시 주어진다고 해도 아마 똑같이 무모하게 달려들 테니까.

김세윤 작가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아 ‘B-Side’를 연재한지도 4년 10개월이 지났다. 코너의 마지막에 돌아보니, 이 코너는 영화를 향한 우리 각자의 사랑이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무모한 믿음이 본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향한 운디네와 메메이의 믿음이 그랬던 것처럼. 그 무모한 믿음이 외롭지 않게 함께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그리고 <월간 윤종신> 편집부와 이 자리에 날 추천해 주었던 김세윤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칼럼의 카운터파트로만 만나서 직접 얼굴을 보고 교류할 기회는 없었던 이은선 저널리스트님께도 우정의 인사를 건넨다. ‘B-Side’는 여기에서 끝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극장에서 동료 관객으로 마주친 적이 있거나, 혹은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영화를 보며 각자 떠올린 다른 영화들과 짝꿍을 맺어주고 싶은 욕망을 이야기하며, 서로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무모한 믿음을 이어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당신의 ‘B-Side’도 내게 들려주시길 바란다.

<수쥬>(2000)
감독
 로예
주연 저우쉰,자홍성
시놉시스
샹하이를 가로지르는 수쥬강. 비디오 촬영기사인 나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두 연인 마르다와 모우단의 목숨까지도 버리는 열렬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연인 메이메이가 있지만 그들과 같은 사랑을 하지는 않는다. 마르다의 사랑이 꾸며낸 거짓이라고 믿었던 메이메이는 마르다와 모우단의 시체를 보고는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에게 마르다와 같은 사랑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요구를 무시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