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절의 너>(2019)

소년의 꿈은 소녀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옆에서 나란히 걷는 게 아니라 뒤에서 남몰래 따라 걷는 걸음. 소년은 세상의 무게를 홀로 짊어진 소녀의 작은 어깨와 등, 매일같이 흘린 눈물로 물기 가득한 뒷모습을 바라본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대신 누군가의 그림자를 자처한 순간부터 그 삶은 필연적으로 고독하고 어두워진다. 그래도 소년은 그 길을 택한다. 소녀가 세상을 지킬 수 있도록, 소년은 소녀를 지키려 한다.

소녀는 그림자가 애틋하다. 소년은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의 날들 가운데 소녀의 손을 잡고 마음을 헤아려준 유일한 사람이다. 세상은 소년을 별 볼 일 없는 양아치 취급하지만, 소녀에게만큼은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소년과 함께 밝은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고 싶던 소녀의 바람은 예상치 못한 불행 앞에 무색해진다. 두 사람 몫의 고통을 모두 껴안고 그림자가 되겠다는 소년의 마음 앞에서 소녀는 흔들린다. 너의 희생이 나의, 우리의 행복이 될 수 있을까.

<소년시절의 너>는 세상천지 오직 둘뿐인 소녀 첸니엔(주동우)와 소년 샤오 베이(이양천새)의 이야기다. 그러나 감히 짐작건대 아마 당신의 예상에서 아주 멀리 빗겨가는 작품일 것이다. 10대 소년 소녀의 멜로라는 점에서 말랑말랑하고 예쁘기만 한 청춘영화의 결을 떠올렸다면 오판이다. 이 영화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학창 시절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아름다운 시간만은 아닌 것이다. 아직 10대인 두 주인공의 나이는 수많은 가능성보다 견고한 제약들 쪽으로 더 기울어있다. 어른들의 세계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책임지기에 충분히 사려 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소년과 소녀가 쉽사리 모두를 속일 정도로 허술하진 않다.

<소년시절의 너>(2019)

영화가 그리는 교실 풍경은 지옥이다. 아이들은 대입 시험에 목숨을 걸고, 가정과 공권력이 온전히 보호해 주지 못하는 사이 학교폭력에 신음한다. 지속적인 괴롭힘을 감당 못한 누군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면, 또 다른 타깃이 정해진다. 첸니엔은 그렇게 폭력의 먹잇감이 된다. 학교 밖, 또 다른 진창에서 구르듯 살아온 베이에게도 삶은 녹록지 않다. 폭력에 얼룩진 일상을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 순간, 비정한 세상에 조심스레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넌 세상을 지켜, 난 너를 지킬게.” 잔혹한 세계에서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끌어안는 두 주인공의 애잔한 멜로는, 한동안 잊고 있던 <천장지구>(1990) 같은 비극적 멜로들의 정서까지 훌륭하게 소환해낸다.

이 밀도 높은 작품으로 증국상 감독은 전작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가 그의 우연한 능력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영화는 현실 고발 드라마와 청춘 멜로 사이에서 팽팽한 균형을 맞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년 시절’의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드러낸다. “내가 당할 때 너는 왜 보고만 있었니?” 학교 옥상에서 운동장으로 몸을 던진 동급생 소녀가 첸니엔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다. 누군가 방관하며 침묵할 동안, 누군가는 지옥에 살았다. 첸니엔이 고통 속에 신음할 때, 그런 첸니엔을 위해 베이가 그림자 인생을 살기로 결심할 때, 이들의 모든 상황과 선택들은 관객에게 뼈아픈 질문으로 날아든다. 당신은 그림자를 자처하는 삶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언젠가, 고통과 눈물로 얼룩진 누군가의 얼굴을 지나친 적은 없습니까.

무엇보다 <소년시절의 너>는 주동우의 영화이기도 하다. 기존의 그 누구와도 비교 불가한 무시무시한 배우다. 새로운 배우가 등장하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시대 흐름을 만들어가기도 하는데, 지금 주동우는 중국영화 신에서 그 역할을 기꺼이 해내고 있다. 그가 연기하는 첸니엔은 보는 이의 마음 안으로 사정 없이 곧장 파고 들어와 끝내 자리를 잡아버린다. 주동우의 작고 앳된 얼굴에는 광활한 우주가 들어앉아있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풍경의 우주다.

<소년시절의 너>(2019)
Farewell My Concubine 
감독
 증국상
주연 주동우, 이양천새
시놉시스
시험만 잘 치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댈 곳 없이 세상에 내몰린 우등생 소녀 ‘첸니엔’과 양아치 소년 ‘베이’. 비슷한 상처와 외로움에 끌려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두 사람은 수능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첸니엔’의 삶을 뒤바꿔버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첸니엔’만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베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