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슬픔을 켜둔 채로
며칠 전, 내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난감해진 얼굴을 애써 숨기면서 급히 대답을 골랐다. “포장지 뜯을 때 말이에요, 이빨을 안 쓰고 손으로 한 번에 뜯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질문을 던진 사람은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이토록 사소한 사람을 완성된 얼굴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고요? 그렇게 반문할 것만 같아서 재차 대답을 덧붙였다.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실 그게 사소하지만 정말 어렵거든요.”
독일 뉘른베르크를 여행할 당시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켓들이 성행을 이루고 있었다. 온갖 조명으로 잘 꾸며진 거리 풍경이나,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서 대낮부터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신중하게 고르던 백발의 노인이었다. 나는 트리 삼을 나무 한 그루 없는 앙상한 사람이었기에 옆에서 잠자코 서서 구경하는 척했다. 노인은 수많은 비둘기 모양의 장식 중에서도 저마다 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듯이, 하나씩 골라 섬세하게 살피고는 내려놓았다. 나는 어쩐지 그 그윽하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사소한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잠깐 정차시키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디테일, 그것은 은유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작은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겠다고.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취를 해왔다. 집이라고 말할 수 없고, 방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협소한 공간들이었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 열어야 했던 작은 냉장고엔 언제나 마실 것들이 즐비해 있었다.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둥지를 트는 곳마다 자주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잠은 집으로 돌아가 자겠지만 눈 떠 있는 동안에는 갈 곳이 얼마 없던 사람들. 밤새 무언가에 대해 떠들고, 아침이 오는 새삼스러움을 함께 실감했던 사람들. 나는 아마도 그런 사람들을 친구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이야기, 사회생활을 번듯하게 해 나가는 이야기, 결혼과 이혼 이야기, 시만 써서 먹고사는 이야기…… 허황된 이야기 같았지만 어느덧 우리에게 당도해 그렇게 되어가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은 보란 듯이 실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는 곳으로 오지 않는다.
겨울이 오면 조하문의〈눈 오는 밤〉을 듣곤 한다. 내가 어떤 기분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해질 때면 잠깐 켜 두는 전구와도 같다. 노래에는 “서로의 즐거운 슬픔을 나누던 밤”이란 가사가 나온다. 이미 아득해진 어떤 날이 ‘즐거운 슬픔’이라는 혼종으로 살아남아 나를 견디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면 그제야 내 기분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질 좋은 어둠이었구나, 이것은 가느다란 실선 같은 슬픔이었구나, 이건 누군가 눈동자를 불어줘야만 사라질 먼지였구나 하고는 혼자라는 상태를 그제야 뒤척이게 된다. 그땐 정말 슬픔이 즐거운 일이 되기도 했었다니, 그것을 애써 나누려고 슬픔을 마구 꺼내려고 했다니, 마음의 혹한이란 것이 꼭 아득한 일만은 아니었구나 싶어진다.
어떤 노래는 나의 기분과 닮아 잘 들린다. 어떤 노래는 내 기분에 항의하듯 엉뚱하게 들린다. 어떤 노래는 나보다 먼저 태어나 기쁨과 슬픔을 선행하고는 시간이 지나고도 계속 흐른다. 어떤 노래는 트리를 완성하듯 마지막 장식을 가장 단단한 줄기에 매달기도 한다. 조하문의〈눈 오는 밤〉은 다 함께 걸었던 미끄러운 길녘에서 누군가 넘어지지 않았는지 뒤돌아보는 노래다. 그런 작은 근심과 걱정들로 무사히 도착해 있는 여기에서 과거 우리의 어깨에 쌓인 눈송이를 털어주는 노래다.
파스텔 키냐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음악에는 느닷없는 호출, 시간의 독촉, 마음을 뒤흔드는 역동성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이동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음의 원천을 찾아가게 만든다.” 우리가 함께 보낸 많은 밤들이 어디에서 어둠을 키우면서도 온기를 지키고 있는지 생각한다. 나는 종종 자리를 털고 그곳으로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노래를 찾아 듣는다. 노래 속에서만큼은 영원히 눈 덮인 지붕 밑을 환하게 데우며 옹기종기 떠들고 있는 우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이 내 인생에 있어 어쩌면 사소하고, 작디작은 시간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노래 한 곡으로 잠깐 삶이 멈춘 것처럼 멍하니 지나간 시간을 켜 둘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때는 성질이 급해 이빨로 과자 봉지를 뜯고, 컵라면 비닐을 벗기던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가 끝내 무엇이 되지 않았는지 보고 싶어지는 겨울이다. 김 서린 안경을 닦아 선명하게 보고 싶은 작디작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