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 모처럼 예고편에서 보여준 것 이상의 큰 스포일러는 없는 글입니다. 안심하고 읽으셔도 됩니다.

하나(김나연)는 마음이 복잡하다. 각자의 일로 바쁜 엄마와 아빠는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사춘기에 접어든 오빠는 부모의 불화를 애써 외면한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지금처럼 엄마와 아빠가 싸웠을 때, 같이 가족여행을 갔던 걸 계기로 두 사람이 화해했던 걸 기억하고 있는 하나는 여름 내내 가족여행을 가자고 조르지만, 그게 자기가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속내가 시끄러운 건 유미(김시아)와 유진이(주예림)네 자매도 마찬가지다. 유미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벌써 이사만 예닐곱 번째인데, 친구가 하나 생기자 마자 기어코 여덟 번째 이사를 가야 한단다. 늘 새로운 동네에 익숙해져야 하고, 매번 친구 하나 없는 동네에서 막막하게 다시 시작하는 짓거리를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유미는 한숨부터 나온다. 우리 집은 정말 왜 이러지.

윤가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우리집>(2019)을 보면서 난 20여년 전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유미처럼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던 건 아니지만, 하나네 집보다 아주 조금은 더 요란스러운 불화를 경험했던 터라 그 심정이 어떤지 대강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가 유미에게 이 말을 건네는 순간이, 내겐 참 마법 같았다. “근데, 내가 안 헤어지게 할 거야. 내가 지킬 거야, 우리 집. 너네 집도. 뭐든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안도하고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지키려고 노력해보겠다는 다짐은 얼마나 힘차고 씩씩한가. 내가 하나의 나이였을 때, 내가 할 줄 알았던 건 하나의 오빠 찬(안지호)처럼 일찌감치 포기하고 “제발 헤어질 거면 빨리나 좀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구시렁거리는 것뿐이었는데 말이지.

하나와 유미, 유진의 모험을 보며 떠올린 작품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윤가은 감독의 전작이자 <우리집>과 같은 우주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2015)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션 베이커 감독의 2017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였다. 아마도 <우리집>을 본 관객이라면 높은 확률로 이미 <우리들>을 보았거나, 혹은 <우리들>을 보고 싶어질 게 분명하니 여기에선 <플로리다 프로젝트> 이야기만 해보자.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에겐 집이 있는데 집이 없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 이후 극빈상태에 내몰린 사람들 중 몇몇은 플로리다 올랜도 디즈니월드 근처의 모텔촌에 주 단위로 숙박비를 내며 주거를 대체했다. 한국의 고시원이 그렇듯 사실상의 홈리스 상태인 셈인데, 무니의 엄마인 핼리(브리아 비나이테) 또한 모텔 ‘매직 캐슬’의 장기 투숙객이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탓에 팔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파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는 핼리의 삶은 황량하다. 그래도 어린 무니와 그의 친구 젠시(발레리아 코토)는 그 속에서 어떻게든 즐거워할 만한 것들을 찾는다. 모텔 복도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고, 사람들이 버리고 간 빈집을 탐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어른 숙박객들을 훔쳐보고 자기들끼리 키득거리고, 낯선 사람들을 졸라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으면서. 무니와 아이들에게는 불행하다고 느낄 법한 이유가 차고 넘치지만, 아이들은 마치 절대로 불행해지지 않겠다고 결의라도 한 듯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너무 눈이 부신 나머지 매직 캐슬의 투숙객들을 매순간 주눅 들게 만드는 행복이 길 건너 디즈니월드에서 손짓하고 있더라도, 지금 손에 쥔 행복을 온전히 지켜내는 게 아이들에게는 중요하니까.

물론 두 작품(<우리들>까지 치면 세 작품) 속 아이들이 언제나 좋은 선택을 내리거나 착하게만 굴지는 않는다. 아이들도 사람인 만큼, 때로는 이기적이고 가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종종 어리석다. 하지만 행복이 가장 간절한 순간이 되면, 서로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행한다. 어른들은 알면서도 체면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들을, 아이들은 모든 핑계를 뛰어넘어 성큼 용기를 내어 해내고야 마는 것이다. 유미가 마음 둘 곳이 필요해 건넨 절박한 질문에 하나는 선뜻 긍정의 말로 답을 하고, 무니의 눈물을 본 젠시는 무니의 손목을 잡고 하염없이 질주한다. 살면서 우리는 어쩌면 원하는 걸 얻는 순간보다 그러지 못하는 순간을 더 많이 경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행복해지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하나와 유미가, 무니와 젠시가 경험한 기적 같은 순간들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The Florida Project
감독
 션 베이커
주연 윌렘 대포, 브루클린 프린스
시놉시스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건너편 ‘매직 캐슬’에 사는 귀여운 6살 꼬마 ‘무니’와 친구들의  디즈니월드 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