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최유월

LAX – ORD
8:03 AM
UNITED 1598

나는 아이폰의 메모장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2시 37분. 구글맵을 켜고 금요일 오전 6시 출발 웨스트 헐리우드에서 LAX 공항까지 자동차로 이동 예측시간을 확인했다. 약 45분에서 1시간 50분… 폰에서 얼굴을 떼자 시야를 가득 채운 인간들의 얼굴이 오렌지색 조명을 받아 그로테스크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한 모금 남은 칵테일을 삼킨 뒤 집중력 있는 고뇌를 시작했다. 일단 우버를 부르고, 안녕, 안녕, 재빨리 인사를 나누고, 내 몫의 계산을 마친 뒤, 호텔까지 이동하여 급하게 샤워, 짐을 꾸리고,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공항으로 향하기까지, 내가 가질 수 있는 수면 시간에 대해서.

사람들이 레게로 편곡된 스매싱펌킨즈의 Bullet with butterfly wings를 떼창하기 시작했다.
이 술집의 이름이 뭐야? 
드레스덴.
가능한 수면시간은 두 시간 반이었다.
아까 테라스 너머로 유난히도 커다랗게 뜬 달빛에 비친 요염하게 빛나는 십자가.
사이언톨로지 교회라고 했다.
가능한 수면시간은 이제 두 시간 이십분.
드레스덴은 엑스세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목요일 밤 때이른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내 앞에 앉은 A와 B와 C와 D는 나름의 저명한 문학인사들로서, 페인터이자 시인, 조각가이자 댄서, 현대 미술 평론가이자 인디 밴드의 리더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들이 늘어놓는 고상한 대화에 나는 전혀 끼어들지 못했다. 내 앞에 새롭게 놓인 마티니잔을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무도 내가 여기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반대로 아무도 내가 꺼져주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마침, 누군가 나에게 오늘의 낭독회가 어떠했는지 물었다.
-두 명 왔죠. 아니, 세 명인가?
그는 측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요,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북투어가 원래 그런거죠.
그는 흥겹게 동의하며 자신이 겪었던 가장 인기 없었던 관객과의 행사에 대해서 설명했다.
-저는 실망하지 않았죠. 왜냐하면 영화가 정말로 쓰레기였거든요.
나는 측은한 표정을 돌려주었다.
술을 마셨다.
처절했던 레게버전 스매싱펌킨즈의 노래가 마침내 끝이 나고, 갑자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썰물처럼 가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차분한 분위기 속 흘러나오는 텅 빈 재즈 음악. 순식간에 모두가 모두를 향해 인사하고, 작별하는 분위기.
가능한 수면시간 두시간 칠분.
10분 뒤, 나는 B와 C와 또 새롭게 나타난 E와 F와 함께 또 다른 술집에 들어 있었다. B와 나는 같은 호텔에 묵는 중이다. 나는 여덟시 시카고로 떠나고, 그녀는 오후 1시 오스틴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B와 C가 돌아간 A에 대해서 늘어놓는 정신사나운 말들, A의 기묘한 연애담과 기묘한 집, 그녀가 손을 대면 순식간에 기묘해지는 온갖 기묘한 것들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오전 2시 13분, B와 나는 C의 오래된 도요타차에 실려 호텔에 도착했다. C는 자신의 집이 있는 웨스트우드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와 B는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포옹하고, 행운을 나누고, 서로의 주소를 교환한 뒤 헤어졌다. 
낡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덜컹대며 열리는 즉시 덮치듯 펼쳐진 멋 없는 에메랄드색 카페트가 깔린 새벽의 나른한 호텔 복도, 미로처럼 이어지는 복도의 가장 끝 내가 묵는 손바닥만한 방은 어느새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표백제 냄새가 나는 빳빳한 침대 위로 뛰어드는 대신 티비를 켰다. 킴 카다시안이 크리스 제너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의 할리우드 악센트는 정말이지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데가 있다. 클로이 카다시안은 운동을 하다 울음을 터뜨리고, 다음 장면, 영혼을 빼앗긴 표정으로 거실로 입장하는 칸예 웨스트…

오전 8시 3분, 나를 태운 비행기가 성공적으로 이륙했다. 시차증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 [24분의 1]은 젊은 소설가 24인이 매월 한 명씩 참여하여 24시간을 채우는 짧은 픽션 코너입니다. 참여 소설가들에게 특정한 ‘시간’이 창작 소재로 주어집니다. 2019년 1월에 시작해 2020년 12월에 완성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