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요즘 내 노트북 ‘즐겨찾기’에 나날이 추가되는 것은 ‘ASMR’이다. ASMR은 자율 감각 쾌락 반응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로 주로 청각을 중심으로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후각적 자극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심리적 안정감, 쾌감을 일컫는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다. ASMR 영상 중에서도 얼굴이나 머리카락 쓸어 내리는 장면들을 즐겨 보는데, 다른 사람의 신체를 통해서 내가 마치 마사지 받는 듯한 대리 체험을 한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즐겨 보는 ASMR 영상들은 참으로 요상하다. 특히 가장 압도적인 감각은 ‘팅글’ (tingle, 기분 좋게 소름 돋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쓰는 상태로, 이 모든 다채로운 감각들이 절정에 오른 순간이다. 때때로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바람 부는 소리, 시냇물 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최근에 나는 이제까지 경험해본 ASMR 영상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감각을 어느 전시에서 접한 뒤에 이전의 감각들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전시에서 마주한 영상은 내가 단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감각이기에, 그 장면이 오래도록 계속 맴돌았다. 영상의 길이는 20여분 정도 되는데, 마을 어부들이 저마다 물고기를 잡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은 직후의 장면들이 너무나 기이했다. 그들은 갓 잡은 물고기를 바로 죽이지 않고 가슴팍에 안고 아주 천천히,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물고기는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숨이 가빠 펄떡이는데 그 순간에 어부들은 물고기를 마치 반려동물 대하듯이, 혹은 죽음을 앞둔 이의 곁을 지키듯이 소중히 어루만진다.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물고기를 달래며 교감하는 어부들의 표정은 비통하다.

이 작품은 조나타스 지 안드라지(Jonathas de Andre)의 <물고기>(2016)라는 작품으로 브라질 북동쪽 연안 마을 어부들의 의식을 다룬 영상 작업이다. 조나타스 지 안드라지를 포함해 11명 브라질 작가들과 한국 아티스트 8팀, 그리고 디자이너, 문학가, 환경운동가, 가드닝 스튜디오 등이 참여하고 있는 이 전시는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Dear Amazon: 인류세 2019》이다. ‘인류세’ (Anthropocene)는 인류에 의해 지구 환경이 변화하는 지질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질 시대를 구분하고 환경 훼손에 따른 생태 위기를 다루는 개념을 넘어 인류의 존재와 미래를 둘러싼 거대한 담론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적인 환경문제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전시에서 작가들은 레이저 빔, 네온 LED 조명, 그래피티, 게임, 사운드, 사진, 비디오 등의 설치와 워크숍, 퍼포먼스를 통해 생태적 상상을 제안하고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의한 고정관념을 해체 시킨다.

그런데 단순한 촬영 방식으로 현장을 기록한 조나타스 지 안드라지(Jonathas de Andre)의 <물고기> 영상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있는데도 계속 아른거렸다. 결국 나는 전시의 동선을 역행하며 <물고기>를 재관람하기 위해 이동 방향을 틀어 다시 영상과 마주했다. 평소에는 길이가 긴 비디오 작업을 끝까지 보지 않고 일부만 보곤 했는데, 이 영상은 수차례 계속 보게 되는 이상한 마력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촉각적 경험 때문이었다. 영상을 계속 보다가 어부가 쓰다듬고 있는 생명이 ‘물고기’가 아니라, ‘고양이’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문득 생명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그 동안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전시를 본 동료 작가 역시 <물고기> 영상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한번에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기 때문에 어부들의 손길과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게 되었고 그들이 물고기와 교감하는 느낌을 자신 안에서 적극적으로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실제로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을 때 저런 의식 행위를 정말 하는 것일까? 너무 생경한 장면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동료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내 안에 어떤 파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결국 그런 의심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영상을 계속 보다 보니까 어쩌면 내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 이해했다고 여기며 쉽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해 할 수 없는 미지의 순간과 장면을 자신 안에 품고 계속 질문을 던져보는 행위, 그러한 지각과 감각을 그동안 잊고 지낸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대상을, 생명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김연수 작가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는데 아래 구절이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른다, 라고 해야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이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 ‘사람’ 대신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로 치환해보자 물고기를 가슴팍에 안고 쓰다듬는 어부의 마음을 조금 다른 감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젠가 이 영상에 응답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품게 되었다. 그 때 Dear_______ 수신자는 누가/무엇이 될까?

《Dear Amazon: 인류세 2019》
기간
2019년 5월 31일(금) ~ 8월 25일(일)
장소 일민미술관 1, 2, 3전시실, 5층 Presseum 영상실, 옥상
최근 국제 예술계에서 관심이 급부상한 브라질 젊은 세대 작가들의 새로운 예술 경향을 소개하고, 한국의 동시대 미술가들을 포함해 총 19명/팀이 인간과 생태계의 공존을 둘러싼 미래 세계의 예술적 전망을 다루는 디어 아마존: 인류세 2019를 선보인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배하는 지질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2000년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에 의해 처음 환경문제에 대한 염려 속에서 등장했다. 크뤼천은 인류세라는 용어를 통해 인간의 모든 활동이 온실가스 배출, 산림벌채, 핵실험이라는 형태로 자연환경을 큰 폭으로 변화시켜, 지구 곳곳에 인류가 그 흔적을 남기게 된 시대를 가리키고자 했다. 오늘날 인류세는 단순히 지질 시대를 구분하고 환경 훼손에 따른 생태 위기를 다루는 개념이 아니라, 인류의 존재와 미래를 둘러싼 거대한 담론이 되어가고 있다. 전 지구적 과제인 ‘인류세(Anthropocene)’와 관련한 지구 생태위기를 다양한 동시대 예술 실천들과 인문학의 통합적 관점에서 다루는 본 전시는 비서구권 예술가들이 펼치는 ‘생태학적 상상’을 통해 인류세의 또 다른 해석의 출현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출처- 일민미술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