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_yourbookshelf_201711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영국에 사는 그는 출판사 편집자로 마흔을 앞두고 있다. 여기 한 여자도 있다. 한국에 사는 그녀도 출판사 편집자 출신. 이제는 1인 출판사를 창업했으며 마흔을 앞두고 있다. 같은 듯 다른 두 사람의 생활에는 최근 동일한 점이 있다. 한심할 정도로, 제대로 된 독서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

두 사람의 독서 상태를 점검하면 참담하다. 인터넷의 온갖 쓸데없는 글들, 이메일, 광고 우편물 등을 읽을 뿐. 이것은 독서라기보다는 그냥 읽을거리를 훑어보는 정도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에게 구원의 여지는 있다. 뼛속 깊이 탑재된 ‘책 덕후’ 기질은 사라지지 않은 것. 구체적인 방법은 그려지지 않지만, 책으로 인생을 개선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은 잃지 않고 있다는 것.

먼저 실천한 것은 영국 남자였다. 그는 ‘인생 개선 독서 프로젝트’를 결심하고 1년에 50권의 고전 읽기를 시작한다. 야근, 육아, 집안일 등을 핑계로 그동안 날려버렸던 시간을 촘촘하게 안배해 책 읽기를 시작한다. 요리를 하면서, 아내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출퇴근하는 열차 안에서. 그 치열한 도전은 1년간 지속된다.

그렇게 골라 읽은 책은 소위 ‘걸작’이라는 작품들. 그는 걸작이라는 세평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만의 시선으로 책을 읽고 평가한다. 그 후 회사를 그만둔 그는 5년간의 구상과 집필 끝에 『위험한 독서의 해』를 출간, 그동안의 독서 이야기를 ‘덕후스럽게’ 소개한다.

이 영국 남자의 도전은 한국 여자인 내가 평생 찾아 헤매던 ‘책으로 인생을 진짜 바꾸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릴 적부터 세뇌당하다시피 듣던 말, “책을 읽어야 인생이 달라진다.”라는 그 모호한 명제를 영국 남자, 앤디 밀러는 확연하게 증명했다.

2016년을 앞둔 어느 날 접한 『위험한 독서의 해』는 서평부터 나를 잡아당겼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앤디 밀러처럼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글쓰기’를 새해 목표로 삼았다. 2016년 연말, 결과는 참담했다. 일주일에 한 권 읽기는 실패, 그나마 읽은 책에 대한 글쓰기도 실천하지 못한 채 1년을 보냈다.

2017년에는 성공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꼴로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의무감으로라도 책을 읽자는 것이 의도였다. 그럭저럭 50권의 책은 읽어가지만 기록이 문제다. 핑계를 대자면 책을 읽어내는 것도 버거운 상태라 ‘덕후스러운 기록’은 물 건너갔다. 어느덧 또 연말이다.

‘월간 윤종신’의 이 지면에 소개할 책을 고민하는데 『위험한 독서의 해』만큼 적절한 책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출판업에 종사하는 동지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책으로 인생을 ‘정말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을 다시 읽고 나니 이번에도 ‘인생 개선 도서목록’을 만들어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선다. 이제부터 한국 여자는 2018년에 읽을 50권의 도서목록을 작성할 것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기 위해 블로그에 공언도 할 예정. 파워블로거는 아니지만, 하루 평균 300명 정도는 방문하는 블로그니 적당한 책임감은 느껴지겠지. 주위에 읽을 책을 이야기하고 다닌 앤디 밀러처럼, 나도 독서모임 회원들에게 계획을 소문내야겠다.

두 번이나 실패했기에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하지만 이제는 전과는 다른 절실함이 있다. 몇 주만 지나면 마흔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했다. ‘절실함’이 어느 때보다 충만하니 이번 계획은 현실이 되지 않을까. 그 증거인 『위험한 독서의 해』는 내년에도 내 책장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위험한 독서의 해』
지은이 앤디 밀러
옮긴이 신소희
출판사 책세상
출간일 2015-08-05
한때 서점 직원이었고, 현직 작가 겸 출판 편집자인 앤디 밀러. 누가 봐도 ‘책쟁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그는 한때 애독심을 잃고 업무 이메일과 우편 광고물만 읽는 탕아였다. 최근 수년간 읽은 책이라곤 『다빈치 코드』가 전부였던 그는 우연히 읽게 된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로 인해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한번 깨닫고, 인생 개선 도서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위험한 독서의 해』는 앤디 밀러가 불혹에 재회한 첫사랑 같은 고전 50권을 소개하는 책이다. 몹시 솔직하기도 하고, 때로는 심술 맞기까지 한 그의 책들에 대한 평가. 자유로운 방식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는 옆집 망치질 소리에 글이 잘 안 써지면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해 가면서 시시콜콜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묘하게 읽는 이의 웃음을 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