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e in the Wall
내가 처음으로 한남동에 발을 디딘 그날, 나는 열네 살치고는 제법 대범한 소녀였다. 그저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세 시간쯤 걸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를 무작정 찾아갈 만큼 용감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강 다리를 건넌 버스가 나를 한남동에 내려놓았을 때 한껏 들이마셨던 축축한 공기의 냄새를,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정류장에서 남산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 골목이었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 몇 개를 피하는 사이, 나는 UN빌리지 입구에 당도해 있었다. 골목은 예상보다 한적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빈 종이와 펜을 꺼냈고, 눈에 띄는 가게나 골목을 간단히 표시하며 의욕적으로 가파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빠의 집을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내게 UN빌리지는 성지였다. 일제강점기 일본 장교들의 관사가 있었던 곳에 50년대 UN군의 관사가 들어서며 UN빌리지라 불리기 시작했다는 역사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다만 연예인들이 몰려 사는 곳, 그곳에 나의 오빠 또한 살고 있었고,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나는 UN빌리지가 동네를 지칭하는지, 아니면 특정 건물을 의미하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팬들이 PC통신 팬클럽 게시판에 자랑삼아 올린 사진들이 있었다. 그들은 절대 오빠의 집으로 가는 길을 쉽사리 공유해주지는 않았지만, UN빌리지의 출입구가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나 오빠가 사는 건물의 층수, 벽돌의 색깔처럼 그곳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조립해볼 수 있을 정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랬다.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는 점만 제외하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오빠의 집을 찾지 못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운이 좋다면 오빠의 집으로 향하는 다른 팬들을 뒤따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몇 주간 모은 두둑한 용돈이 있었고, 친구의 거짓말을 동원해 외박의 기회도 얻어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한 후엔 팬클럽 단체복으로 입던 우비도 챙겨넣었고, 사인을 받을 CD와 매직펜을 비닐 파우치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생각이었고, 집을 찾기만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오빠를 만나고 말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날, 내 야심 찬 계획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큰 골목을 따라가다 만난 작은 골목 어귀에서였다. 나는 한쪽 어깨로 우산을 받친 채 지도에 샛길을 그려넣는 중이었고, 그래서 누군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골목에서, 그녀를 만났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빗물에 젖어 얼룩진 청바지 밑단과 계절에 맞지 않는 여름용 샌들을 신은 흰 발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우산을 들어올렸다. 허리춤에서 절반쯤 빠져나온 연노란 블라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마스크는 그다음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붉게 충혈된 커다란 눈이 먼저였고, 빨간 마스크는 그다음이었다. 정확히는 왼쪽 가장자리부터 붉게 피가 번져 있는 흰 마스크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광대 근처의 멍을 본 것도 같다. 우산도 들지 않은 그녀의 행색이 너무 기괴해 보여, 나는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골목에 그녀와 나 단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그 직후였다.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지나치려 할 때, 그녀가 내 시선에 답하듯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쌍꺼풀이 짙고 커다란 예쁜 눈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두 눈은 더욱 괴기스러워 보였다.
돌이켜보면 우스운 일이다. 머릿속에 두어 해 전쯤 유행한 괴담 하나가 떠올랐다는 게. 빨간 마스크를 쓴 아름다운 여자가 양옆으로 길게 찢긴 입을 보여주며 예쁘냐고 묻고는 대답하는 사람의 입을 찢어버린다더라 하는…… 괴담의 버전은 다양했지만, 누구도 입을 찢기는 일을 면했다는 경우는 없었다.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홀로 낯선 동네를 찾아가는 대범한 소녀이기는 했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학교와 도시 괴담들에는 몸을 떨며 자란 아이였다. 온갖 괴담이 자정 뉴스에도 실제로 보도되었다는 말이 나돌고, 무서운 이야기와 조악하게 편집된 사진들이 들어 있는 책들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녀가 정말로 빨간 마스크라고 믿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멀쩡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학교 앞 장미 넝쿨 아래서 하염없이 서 있다가 하굣길의 아이들을 뒤쫓는 미친 여자 정도는 나의 현실에 실제로 존재했으니까.
걸음을 멈춘 그녀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려세우는 듯했다. 나는 우산을 집어던지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가파른 언덕을 단숨에 달려내려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은 큰 도로까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고, 그대로 길을 건너 돌아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만반의 준비를 했던 오빠와의 만남을 왜 그렇게 쉽게 포기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그땐 도저히 되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UN빌리지의 출입구가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여배우 P의 인터뷰를 읽은 건 그날 일로 감기에 걸려 찾아간 이비인후과의 대기실이었다. 오빠의 사진 한 장 실리지 않은 철 지난 여성지에 그녀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고등학생 때 데뷔를 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버텨온 시간에 대한 소회,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결혼을 결심하며 새롭게 꾸게 된 꿈에 대한 이야기기 퍽 진지했다. 그러나 내가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인터뷰 내용이 아니라 커다랗게 실린 얼굴 사진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펼쳐 그녀의 얼굴 절반을 가렸다. 너무 커다래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던 그 눈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혼을 해 한남동에 살고 있다는 정보마저 꼭 들어맞았다. 그녀가 분명했다.
나는 당장에 친구들에게 한남동에서 만난 빨간 마스크가 알고 보니 여배우 P였다고 떠들어댔다. PC통신 팬클럽 게시판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올렸다. 그날의 일은 내게 무용담이 되어 있었다. 실감나는 이야기를 위해 “내가 예쁘니?”라고 묻는 빨간 마스크의 대사를 조금 고쳐 “내 얼굴이 그렇게 흉하니?”라고 꾸며넣긴 했어도 대체로 내가 본 것 그대로를 적었다. 당연히 나는 모두의 놀림거리가 됐다. 몇 달 뒤 그녀가 가정 폭력을 당해왔다는 기사가 보도되기 전까지는.
놀랍게도 내가 PC통신 게시판에 올렸던 바로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 귀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P의 소속사는 모든 걸 루머로 일축했지만, 반년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이혼을 발표했다.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이 이혼 사유였다.
폭행설 이후에야 비로소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배우로서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빨간 마스크 P의 이야기는 그녀의 과거와 함께 다른 도시 괴담들처럼 조금씩 변형된 버전으로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대중이 모든 걸 빨리 잊어버린다는 건 얼마만큼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결코 잊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녀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모종의 죄책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스무 해가 지나 그녀에게 직접 그 일에 대해 고백하게 된 것은, 정말이지, 순전히 우연에 가까웠다. 연예 잡지의 촬영 기자가 된 건 십대 내내 연예인을 따라다닌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결국엔 UN빌리지에 입성했고, 그곳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오빠의 사진을 찍어댔다. 그걸 좀더 잘해보려던 게 아주 직업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만나 그날에 대해 고백을 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새 영화 개봉을 앞둔 인터뷰였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다소 긴장해 있던 나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오히려 안도하고 있었다. 중년에 접어든 P는 자유로워 보였다. 그 이후로 그녀는 톱클래스의 자리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화려한 여배우와 수수한 주부 이미지 사이의 낙차가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대중은 그녀에게서 꾸밈없고 온화하며 아름답게 나이 먹어가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수많은 여성의 이상적인 모델이 됐다. 어느새 내게도 그녀처럼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나는 셔터를 누르며, 고통스러운 사생활이 만천하에 전시된 과거를 지나고도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위안을 받았다.
필요한 사진을 충분히 찍었다고 생각해 장비를 철수하고 화장실에 들른 참이었다. 막 인터뷰를 마친 P가 화장실로 뒤따라 들어왔다. 먼저 말을 건 건 그녀였다. 수고했다는 한마디에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나는 잠시 머뭇거렸고, 그녀는 내 머뭇거림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외람되지만…… 선생님, 오래전부터 사과드리고 싶은 게 있었어요.” 초록색 타일을 밟고 선 머스터드색의 스틸레토 힐이 나를 향해 서 있었다. 그 날렵한 구두코를 내려다보며, 나는 고백을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기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동행한 선배와 맥주를 마시는 동안에도 내 정신은 온통 화장실에서의 대화를 돌이키는 일에 붙들려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 워낙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은 안 나요. 아무튼, 그걸 이십 년씩이나 속에 담아뒀다니.” P는 담담하게 들었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녀의 사려 깊은 눈빛 안에서 내 어린 날의 실수가, 오랜 죄책감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밤새워 그녀의 사진을 고르고 편집하는 일에 몰두했다. 보답으로 그녀에게 가장 좋은 사진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제 신경쓰지 마요. 열네 살이면 완전 아기였잖아. 솔직히 그 일이 날 이렇게 주목받게 만들기도 한걸.” 그녀는 내가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소속사로부터 인터뷰 내용을 잡지에 게재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은 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편집장은 인터뷰를 취소하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내 예상이 맞았다면 내가 그 이유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나 나 역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선배가 편집장에게 시달리는 오전 내내 모니터를 구석진 방향으로 돌려놓은 채 쓸모없어진 그녀의 사진들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내 고백의 어느 지점이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이제 와 그 일을 다시 들춘 게 잘못이었을까. 내가 보았던 사람이 그녀가 아니었던 걸까. 다시 사과를 해야 할까. 꼬리를 무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던 중이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모니터 위에 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여기저기 일그러져 있었다. 마우스를 쥔 손이 기계적으로 그녀의 얼굴 곳곳을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거의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사진 속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는 마우스가 지나가지 않은 자리에 온전히 남아 있는 커다란 왼쪽 눈이었다. 나는 사진의 크기를 늘리며 모니터 쪽으로 얼굴을 바짝 가져갔다. 그리고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나를 부르는 신경질적인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그것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선배는 단 일 초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편집장의 잔소리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닫으려는데 커다랗게 확대된 사진이 돌연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진의 수정 사항을 저장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닫은 뒤, 바탕 화면에 나와 있는 사진 폴더를 치워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사무실을 나섰다.
그것으로 나와 그녀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리고 P, 그녀는 그때보다 더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아주 가끔,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것이 불현듯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그녀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는 일 만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것은 이미 폴더 속의 폴더 속의 폴더 속의 폴더 속의 폴더 속 어딘가로 끌려들어가버린 것이니까.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적어도 내게는 너무 오래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