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_bside_201707

삶에 그늘이 많은 유년을 보낸 아이들은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본다. 남들이 웃고 떠드는 일들에 함께 웃지 못하는 아이들은 대신 남들이 눈 여겨 보지 않는 것들을 혼자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시간이 쌓이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남들과는 사뭇 달라져 있는 법이다. <플립>(2010)의 줄리(매들린 캐롤)이 그런 아이다. 줄리는 시카모어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바라보는 풍광이 얼마나 근사하고 평화로운지 알고 있고, 유정란 안에 반짝이는 생명의 씨앗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는 아이다. 물론 이렇게 숨겨진 것들을 읽어내는 법을 알려준 건 아버지(에이든 퀸)이지만, 멈춰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눈을 가진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마 같은 걸 알려주는 이가 있어도 시큰둥해 하며 지나갔으리라. 아픈 삼촌, 썩 좋지 않은 가정 형편, 집주인이 관리를 안 해주는 탓에 흉물스러워 진 집 앞마당, 날 사랑하지 않는 브라이스(컬렌 매컬리프)처럼 빼곡하게 겹친 불행 속에서, 줄리는 사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행복해지는 법을 익힌다.

뉴잉글랜드 뉴 펜전스 섬에서 만난 소년 소녀, <문라이즈 킹덤>(2012)의 샘(재러드 길먼)과 수지(카라 헤이워드)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족을 잃고 위탁가정을 전전하지만 매번 딱 맞는 보호자를 찾지 못해 파양 당하기 일쑤인 카키 스카우트 소년 샘은, 스카우트 내 그 어느 소년보다 야영 기술이 뛰어나고 남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이 밝다. 비록 같은 스카우트 단원들은 샘의 야뇨증을 문제 삼고 안경을 쓴 소심해 보이는 얼굴을 놀리지만, 위탁가정의 부모들은 마당의 헛간에 불을 낸 게 몽유병으로 밤새 걷다 생긴 일이라는 샘의 말을 믿어주지 않지만. 그런 건 샘에게 큰 상관이 없다. 샘은 연극 <노아의 방주>에 까마귀 분장을 하고 출연한 수지의 아름다움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선생에게 대들었다가 벌칙으로 맡은 배역이지만, 수지 또한 그 아름다움을 알아봐 주는 샘이 있어 괜찮다.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이들과 자주 다투는 수지는, 그런 자신을 둔탁하게 ‘문제아’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원망스럽다. 부유하고 유능한 부모지만 둘의 결혼 생활에는 사랑이 없어 보이고, 양육에는 애정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마법과 판타지의 세계를 유영하던 수지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샘과 함께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1965년 9월의 일이었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줄 안다는 의미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의미와 이어진다. 줄리는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크다”는 아리송한 말의 의미를 대번에 파악하고, 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겉으로 보이는 윤곽이나 도드라져 보이는 멋진 부분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작고 여린 부분 부분들이 지닌 가치를 다 셈한 것이야 말로 상대의 진짜 가치를 알 수 있다는 뜻이리라. 샘과 수지도 서로가 서로에게 그랬다. 수지는 밤에 잠자리에 실례를 할 지도 모른다는 샘의 고백에도 ‘문제 없다’고 넘어가주고, 샘도 수지가 읽어주는 판타지 동화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면서도 ‘재미 있으니 계속 읽어 달라’고 독려한다. 그리고 그런 삶의 태도는 주변으로 전염된다. 줄리를 밀어내기 바빴던 브라이스는 줄리에 비하면 자신의 행동은 얼마나 편협하고 비겁했는지 돌아본 뒤 비로소 줄리를 이루고 있는 면모들이 하나하나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샘과 수지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애쓰던 어른들은 둘의 여정을 뒤쫓다가 결국 둘을 지켜내는 쪽을 택한다. 겉보기엔 투박하고 사납고 어설픈 것들 속에,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빛들이 반짝거린다.

줄리와 브라이스, 샘과 수지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꼭 해피엔딩이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이 어리고 서툰 연인들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함께 하리라는 보장 같은 건 없으니까. 우리가 이 이야기들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면, 그건 우리 또한 이 소년 소녀들의 넓고 남다른 시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빛을 찾아 그 아름다움을 누리는 시야를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문라이즈 킹덤(2012)>
감독 웨스 앤더슨
주연 자레드 길만, 카라 헤이워드
시놉시스
사고로 가족을 잃고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카키 스카우트의 문제아 ‘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친구라곤 라디오와 책, 고양이밖에 없는 외톨이 ‘수지’. 1년 전, 교회에서 단체로 연극을 보다가 몰래 빠져나온 ‘샘’은 까마귀 분장을 한 ‘수지’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그 후로 둘은 펜팔을 통해 감춰왔던 상처와 외로움을 나누며 점점 가까워진다. 서로를 보듬어주는 유일한 소울메이트이자 연인이 된 ‘샘’과 ‘수지’는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아지트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겨 각자 약속 장소로 향한다. 몇 시간 후 ‘샘’과 ‘수지’의 실종사건으로 인해 펜잔스 섬은 발칵 뒤집히고, 수지의 부모님과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은 둘의 행방을 찾아 수색작전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과연 ‘샘’과 ‘수지’의 애틋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