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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결말만 보면 <매기스 플랜>은 매기(그레타 거윅)가 끝내 목표했던 바인 “남편 없이 아이만 가지는 삶”을 어찌어찌 쟁취해내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말까지 가는 과정이 참 험난하다. 아이와 자신만 존재하는 미니멀한 삶을 원했기에 정자를 기증한 가이(트래비스 핌멜)에게 어떠한 권리도 주지 않길 바랐던 매기는, 정신 차리고 보니 딸 릴리(아이다 로하틴) 말고도 남편 존(이든 호크)과 그의 전처 조제트(줄리안 무어), 전처 소생의 아이들인 저스틴(미나 선드월)과 폴(잭슨 프레이저)까지 딸린 북적거리는 삶 속에서 허우적댄다. 혼자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렸던 미래도, 속이 뻔히 보이는 존의 고백에 못 이겨 함께 침대에 누웠을 때 그렸던 미래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원한 적 없던 곁가지들이 무성해진 삶, 이 모든 게 다들 사랑받고 싶다는 이기심 때문에 생긴 일이다. 사랑을 받는 일에 익숙해서 책임지는 일에는 무능력해진 조제트와 존, 사랑 받고자 하는 감정 때문에 멀쩡한 가정이 망가질 것에 대해선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았던 매기. 제각기 조금씩 무책임했던 세 명의 어른은 다행히도 파국으로 가는 대신 책임을 나눠지며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를 이루는 타협점에 도달한다. 조제트와 매기는 존을 매개로 하지 않고도 연대할 수 있는 경험을 함께 쌓은 동지가 됐고, 존과 조제트 또한 재결합에 성공한다. 존은 매기와 함께 릴리의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러 가고, 그 옆에서 서툴게 얼음판을 지치는 조제트를 잡아주며 평생 함께 있겠다 말한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한다. 낯설고 이상하지만 이 관계는 균형 잡힌 관계다. 밖에서 보고 떠드는 이들이 뭐라고 하든, 어쨌거나 서로 돌보고 책임을 나누며 작동하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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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사람들이 어설프게나마 더 거대한 가족을 완성하는 이 귀여운 영화를 보면서 <가족의 탄생>(2006)을 떠올리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의 탄생> 속 인물들은 무책임한 사람들, 더 정확히 말하면 무책임한 남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품는 법을 배운 이들이다. 미라(문소리)가 그려왔던 소박한 앞날은 건달 동생인 형철(엄태웅)이 스무 살 연상의 애인 무신(고두심)을 달고 집에 들어오면서 산산이 깨졌고, 일본에 가고 싶었던 선경(공효진)의 꿈은 엄마 매자(김혜옥)가 불륜으로 태어난 남동생 경석을 남기고 세상을 덜컥 떠나는 바람에 시작도 하기 전에 가로막혔다. 형철이나 매자의 연인들이 조금이라도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일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존이 매기에게 그랬던 것처럼 <가족의 탄생> 속 남자들은 하나 같이 이기적이었고, 미라와 무신, 선경의 인생은 남자들이 저지른 사고의 뒷수습을 하느라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렇기에 장성한 경석(봉태규)이 훗날 연애하게 되는 상대인 채현(정유미)은, 자신에게만 마음을 주는 게 아니라 사방팔방에 마음을 한 자락씩 내어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왜 내게만 충실하지 않지? 경석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겠지만 채현에게 이는 당연한 일이다. 제 몫의 책임이 아닌 이들까지 챙기고 돌보며 살아온 이들을 보며 자란 채현에겐,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뻗지 않는 일이 더 이상했을 테니까. <가족의 탄생>에서 가족이란 결국 책임을 지는 이들을 일컫는 다른 말이다. 세간의 기준으로 따지면 굳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이들,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니고 다른 누군가의 무책임으로 버려진 이들을 향해 끝내 손을 뻗어 책임을 진 사람들이 끝내 가족을 이룬다.

그래서 저 멀리 (릴리의 생물학적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가이가 화면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매기스 플랜>의 마지막 장면은, 형철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쫓겨나는 <가족의 탄생>의 마지막 장면과 근사한 대구를 이룬다. 제 책임인 줄 알면서도 달아났던 이는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책임을 나눠지는 관계가 되고 싶었던 이는 책임의 연대 안에 초대되는 결말. 영화들이 옳다. 가족이란 결국 혈연이나 혼인, 가족계획 따위가 아니라 책임지고 품어내는 이들이 완성하는 것이다.

<가족의 탄생(2006)>
감독 김태용
출연 문소리, 고두심, 엄태웅, 공효진, 봉태규, 정유미
시놉시스
누가 보면 연인 사이라 오해할 만큼 다정한, 친구 같고 애인 같은 남매 미라(문소리)와 형철(엄태웅). 인생이 자유로운 형철은 5년 동안 소식 없다 불현듯 누나 미라를 찾아온다. 인생이 조금은 흐릿한 20살 연상녀인 무신(고두심)과 함께.. 똑 부러지는 인생을 꿈꾸던 미라는 사랑하는 동생 형철 그리고 동생이 사랑하는 여인 무신과의 아슬아슬, 어색한 동거를 시작하는데…
한편, 리얼리스트 선경(공효진)은 로맨티스트 엄마 매자(김혜옥)때문에 인생이 조용할 날이 없다. 사랑이라면 만사 오케이인 엄마의 뒤치다꺼리 하다 보니 이리저리 치인 기억에 사랑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선경. 남자친구 준호(류승범)와의 애정전선에 낀 먹구름도 맑게 개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딸의 연애가 위태위태한데 매자는 왜 또 선경을 찾으시는지…
그리고 그 놈의 사랑 때문에 인생이 편할 날 없는 경석(봉태규)과 채현(정유미)이 있다. 얼굴도 예쁘고 맘도 예쁜 채현이 넘치는 사랑을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나누어주다 보니 정작 남자친구는 애정결핍증에 걸리고 만 기구한 커플이다. 이건 아니다 싶은 경석은 참고 참다 둘 사이에 강수를 놓기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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