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LOB 11월의 작가 : 275c
2016년 11월의 작가는 275c이다. 자신을 비주얼 토탈 아티스트로라고 소개해 온 275c는 그때그때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 각기 다른 다양한 작업 방식을 구사하면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Cafe LOB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Spero Spera – Pot’ 시리즈는 평소 제품 종이 상자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가 버려진 상자를 쓰레기가 아닌 관람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출발한 작품이다. 우리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오브제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면서 의미를 확장해나가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275c 작가의 자세한 활동은 홈페이지와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275c’라는 이름이 특이한데요. 어떻게 만들어진 이름인지 궁금합니다.
‘275c’는 고등학교 때 디자인 수업 중에 만든 이름입니다. 자기 명함을 만드는 과제였는데, 본명인 이재호와 어감이 비슷한 숫자를 찾다가 ‘275c’라는 이름을 만들었어요. 일본에서 유학할 때도 마침 일본 이름 중에 ‘275c’와 발음이 비슷한 ‘이치로’가 있어서 ‘이치로상’으로 지냈습니다.(웃음) 별명처럼 불리다가 마음에 들어서 ‘275c’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Cafe LOB에서 전시하는 작품들은 종이상자를 활용한 콜라주 시리즈인데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평소에 마트에 가면 볼 수 있는 다양한 제품 상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진열된 상자 중에 예쁜 건 사진을 찍기도 했고, 버려진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건 꼭 한두 개씩 챙겨와서 작업실에서 물건을 담는 용도로 쓰거나 책장에 진열해두고 감상하면서 영감을 얻었어요. 언젠가부터 그것이 작은 취미가 되었고, 자연스레 언젠가 저 상자들을 이용해서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뜻의 명언 ‘Spero Spera’를 제목으로 정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주변에서 제가 상자를 가져오는 걸 보면 ‘그 쓰레기를 자꾸 주어다 뭐에다 쓰냐, 작업실에 있는 걸 또 왜 가져 오냐’고 물어요. 보통 사람들이 피규어나 스티커 같은 것들을 모으는 것처럼 저는 상자가 보기 좋고 마음에 들어서 모으는 것뿐인데 다들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해서 이번 기회에 주워 온 상자가 쓰레기가 아닌 감상의 대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작업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본격적으로 작업 주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상자를 주워올 때마다 들었던 말(“쓰레기를 왜 모으냐”)에서 착안해서 ‘spero spera’라는 제목을 정했고, ‘이것은 더는 쓰레기가 아니다’라는 메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품이 모두 ‘Pot’ 형태인 것도 의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품을 보호하고 포장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상자가 제 역할을 다하고 버려진 다음에도 또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작업을 진행하면서 도자기를 떠올렸습니다.
요즘 도자기는 감상의 대상으로 보호 받고 관리 받으면서 대대손손 전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그것들도 처음엔 무언가를 담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을 거라는 생각에 상자를 도자기의 형태로 재편집하게 되었습니다.
‘Spero Spera – pot’ 시리즈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기도 한데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단상이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우선 평소에 아끼던 상자들을 재단한다는 게 마음이 아팠습니다.(웃음) ‘또 주워오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매장에서 더는 수입하지 않는 상품들은 상자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정말 아끼는 상자들은 이걸 자를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아니다, 이건 자를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대형마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상자들을 모았는데요. 계산대를 지나갈 때마다 꼭 한 번씩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걸 가져다 어디다 쓰냐고요. 그럼 그때마다 쓸 데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좀 황당한 일도 있었는데요. 모아온 상자를 차에 싣고 있는데, 그 옆을 지나가시던 어떤 분이 하나만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그분이 제가 안 된다고 말씀드리니까 그게 뭐라고 안 주냐고 뭐라고 하시면서 상자를 모아놓은 카트 위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시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가님의 작업 방식은 주제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디지털 작업과 수작업을 넘나드는 것은 물론이고 회화에서 설치 작업까지 하시는 걸 보면 그야말로 한계가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최근에 선보인 다른 작업은 구슬을 이용하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방식을 아우를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작가로서 본인만의 스타일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나만의 무엇을 찾기 위해 항상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고요. 사실 매번 작업할 때마다 ‘오, 좋아! 나는 이제부터 이 스타일로 끝까지 간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해요. 하지만 다음 작업을 구상할 때면 새로운 오브제를 보게 되고 또 새롭게 표현하고 싶은 스타일이 생기는 거죠.
저는 작업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그때그때 해보고 싶은 것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나만의 스타일을 갖는 것은 늘 염두에 두고 있으니, 하루하루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특별히 선호하는 작업 방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10년간의 작업을 돌이켜보면 대부분이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작업들이었습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빠르고 편리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하지만 오리지널리티의 감성을 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시 작업을 할 때는 되도록 드로잉이나 페인팅, 오브제들을 사용하는 수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전시 때의 구슬을 이용한 작업이나 스탠실 작업 그리고 이번 전시의 페이퍼 작업들이 그러한 것인데, 컴퓨터 그래픽처럼 원하는 이미지를 완성도 있게 만들기는 힘들지만, 이것만의 느낌과 감도가 있어서 좋습니다. 수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치유 받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아서 그 점도 좋아요. 언젠가는 100% 수작업을 하는 시간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성격이 무척 다른 여러 브랜드에서 작가님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냥 이번이 내 차례인가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의욕만 앞서서 애송이처럼 내가 우주 최고인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왜 그렇게 조급했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많은 일을 하고 싶고 그림도 빨리 알리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의 작업을 보면서 ‘아,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면서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니,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모든 일이 내 의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명 브랜드나 전시장에서는 고맙게도 언제나 새로운 작가들을 찾고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이 작업하면 그다음에는 나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작가님께서는 10년 가까이 전업 아티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해오셨는데요. 아티스트로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평생 전업 아티스트로 살고 싶습니다. 아직까지도 이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고, 지금도 더 재밌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으니 아마도 오래오래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 언젠가 다른 일이 하고 싶으면 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하는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그리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일인 것 같습니다.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칼을 꺼냈다가 라면이 먹고 싶으면 라면 먹을 수 있는 거잖아요.
꾸준히 성실히 계속 작업을 할 수 있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꾸준히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일이 곧 동력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 줄줄이 사탕이라서 성실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요즘 작업을 하면서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 없이 자생하며 작업해나갈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앞으로도 성실히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것이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월간 윤종신> 디지털 매거진 독자 여러분에게 인사해주세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