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_image-1파라다이스와 유토피아는 어떻게 다를까? Paradise, 즉 ‘낙원’이란 과거 어느 시점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장소, 그러나 ‘지금은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반면 utopia, 즉 ‘이상향’이란 과거에 일찍이 존재한 적 없고 지금도 없는 장소, 그러나 ‘미래 언젠가는 있을 수 있는’ 나라다.

정치인과 경제인은 주로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에 얽매이기 보다‘도달하고 싶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게 체질에 맞기 때문이다. 파라다이스를 예찬하는 건 자연스레 예술가의 몫이 되었다. 순수했던 유년기나 설렜던 첫사랑처럼, ‘되찾고 싶은 그리운 것들’의 이야기로 사람 마음 파고든다. 문학평론가 도정일 교수가 쓴 책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에 나오는 얘기다.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건 결국,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이 서로의 파라다이스를 다시 찾는 여정이구나. ‘지금은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 낙원으로 어떻게든 돌아가려 애쓴 사람들의 로맨스구나. 그래서 이렇게 애틋하고 간절한 거구나. 그래서 그들의 재회가 그토록 다행스러운 거구나.

삭막한 몬타우크 해변에 하얗게 눈이 쌓여가는 동안, 쓸쓸한 둘의 삶에도 다시 행복한 연애의 기억이 눈처럼 소복이 쌓여가는 마지막 장면. 그리움에 이끌려 마침내 외로움을 벗어난 이들의 그 멋진 라스트 신에 이르러, 나는 별 수 없이 또 <비카인드 리와인드>(2008)를 떠올린다.

<이터널 선샤인>을 만든 미셸 공드리 감독이 4년 뒤에 내놓은 코미디 영화. 그 영화의 라스트 신이 <이터널 선샤인> 못지 않게 뭉클했던 까닭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도 결국엔 누군가의 파라다이스를 되찾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어느 가난한 동네의 비디오 대여점 비카인드 리와인드. 이 집은 지금 망해가고 있다. DVD도 한 물 간 마당에 비디오 대여점이 망해가는 건 이상할 게 없다. 설상가상. 재개발도 코앞이다. 가게 살릴 비책을 찾겠다며 주인이 며칠 자리를 비운다. 그때 점원 마이크(모스 데프)의 덜 떨어진 친구 제리(잭 블랙)가 대형사고를 친다. 감전 사고를 당해 자석인간이 된 줄도 모르고 돌아다닌 녀석 때문에 가게 안 모든 비디오테이프가 싹 지워진 것. 이 덜 떨어진 인간들이 내놓은 해결책이 가관이다. 홈비디오 카메라로 엉터리 영화 찍어 대신 채워넣겠다니. 안 그래도 망해가는 가게를 더 빨리 망하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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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백수들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백퍼센트 핸드메이드 시네마가 뜻밖에도 인기를 끈다. <고스트 버스터즈>에서 <맨인블랙>까지, 줄잡아 20여편이 넘는 영화를 마구잡이로 리메이크하는 ‘야메’ 촬영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지역 주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위대한 삼류영화의 시대가 열린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누가 뭐래도 코미디 영화다. 자동차 범퍼로 로보캅 옷을 만들어 입히고, 헤어 드라이어로 악당을 쏘아 맞추며, 욕조를 개조해 자동차로 만드는 장면들이 CG가 난무하는 시대엔 오히려 산뜻한 웃음을 자아낸다.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만삭의 몸매를 뽐내는 주연배우 잭 블랙 덕분에도 관객의 웃음 소리가 점점 커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마냥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비디오 대여점 건물이 철거되기 직전, 겨우 허락받은 한 시간 동안 동네 사람이 모두 모여 함께 영화 보는 마지막 장면. 이웃들이 직접 출연하고 또 직접 촬영한, 조잡하기 짝이 없는 홈비디오 뮤비가 시작된다. 그때부터다. 망해가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이상한 감동이 전해지는 건. 높고 빠르고 거대한 것들만 각광받는 세상의 한 켠에서, 온통 낡고 느리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만 옹기종기 모인 그곳이 그렇게 근사해 보일 수가 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거기 다 모여 있다. 우리가 되찾고 싶은 그리운 순간들이 거기에 다 숨어 있다.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나는 감히 ‘우리 시대의 <시네마 천국>’이라 부른다. 이 영화를 본다는 건 결국, 당신과 나의 파라다이스를 다시 찾는 여정이다. ‘지금은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 낙원으로 애써 돌아가 보는 것이다. 영화가 선물한 ‘그리움’에 이끌려 잠시 현실의 ‘외로움’을 잊게 된다. 그래서 코미디 영화인데도 뭔가 애틋하고 간절하다. 그래서 그들의 라스트 신이 생각할수록 참 다행스럽다. 그래서! <이터널 선샤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카인드 리와인드>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비카인드 리와인드 Be Kind Rewind (2007)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잭블랙, 모스 데프
시놉시스
전력발전소에서 감전사고를 당하게 된 제리(잭 블랙 분)는 우연히 친구인 마이크(모스 데프 분)가 일하는 비디오 가게에 들렀다가 자력으로 인해 모든 테이프들을 지워버리고 만다. 주인에게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한 편 두 편 고객이 원하는 영화들을 맞춤식으로 직접 제작, 촬영, 연기하게 되면서 이들은 일약 스타가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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