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바람이 분다. 낮에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여전히 안개 낀 것처럼 습하고 날이 흐리다. 그래서 나의 기분은-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머릿속에 써보았다. 생각해보면 날씨의 변화에 따라 내 감정도 시시각각 바뀌었던 것 같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도 그랬던 것 같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기상현상에 맞춰 다양하게 변했던 것 같다.

롤랑 바르트의 “날씨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없다”는 선언을 폭넓은 참고자료를 통해 세세하게 분석한 책 <날씨의 맛>은 이같은 개인의 감정에서 더 나아가 예술사와 사회사의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날씨에 따른 우리의 감각의 변화를 짚어낸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을 비롯한 열 명의 지리학·기상학·사회학·문학 등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모여 만든 이 책에는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흔적들, 그리고 끼치는 영향에 대한 세세한 분석이 녹아 있다.

<날씨의 맛>에는 프랑스 각 지역 설화에서 관찰한 ‘바람’이 묘사되는 양상, ‘안개’와 ‘일기예보’를 접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눈’과 ‘뇌우’를 표현한 그림을 비롯해 시, 소설, 수필 등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비’가 어떤 감수성을 내포하는지에 대한 고찰, 현대적 의미의 기상 인식이 여가와 휴가, 일상에 심리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끼치는가에 대한 질문과 연구가 각 장마다 담겨있다. 또 날씨 인식에 대한 극적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를 제시하거나 시대의 사조와 사건을 불러오면서도 과학적인 데이터를 함께 인용하는 등 방대하고 폭넓은 자료를 통해 날씨와 감수성의 상관관계를 분석해냈다.

과학적 통계와 예측으로 규격화된 일기예보 너머의 상징적인 이미지—비가 부스스 내리는 날에는 우울함을 느낀다거나,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아이처럼 신난다거나,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보면 해변에서의 휴가를 떠올리게 된다거나 하는—에 얽힌 감각, 일상에서 날씨에 따라 느끼는 감수성의 결을 아주 천천히 곱씹다 보면 날씨의 맛이 다채롭게 느껴진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들이 정말 나의 감정인지, 날씨를 수식하는 수사학적 관용어구 중 하나가 나의 감수성인지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없을 만큼 우리의 감각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명백한 한 가지, 나의 이 기분은 지금 이 날씨에 달려있다는 것.

날씨의 맛
지은이 알랭 코르뱅 외
옮긴이 길혜연
출간 정보 책세상 / 201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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