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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종신>은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존원(JonOne)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2016년을 시작한다. 2년여 전부터 이번 컬래버레이션을 기획한 윤종신은 존원과 여러 차례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접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두 사람이 선택한 테마는 ‘처음’이다. 지난 12월 초 이번 컬래버레이션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존원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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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래버레이션 작업 이틀 뒤, 윤종신이 직접 존원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함께 작업하면서 진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는 어떤 관계를 형성한 것 같아요.”

윤종신_자기 소개해주세요.
존원_저의 이름은 존원이고, 프랑스-미국-한국인(French American Korean) 스트릿 아티스트/페인터입니다.

윤종신_한국인이요?
존원_네, 한국인이에요. (윤종신을 가리키며) 여긴 제 동생이고요.(웃음)

윤종신_저와 함께 작업한 소감이 궁금해요.
존원_정말 좋았습니다. 진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사랑 노래를 가지고 무언가 해보자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어요. 윤은 본인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고, 저는 거기에 저의 첫사랑인 로사나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여나갔죠. 제 얘기에 윤이 꽤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모두에게 첫사랑이 있는 법이잖아요. 윤과 함께 작업을 해서 기뻐요. 비디오를 찍을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윤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어요.

윤종신_존과 처음 만났을 때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어요. 존이 너는 무슨 노래를 하냐고 물어봐서 나는 사랑 노래를 많이 한다고 했더니, 존이 자기 첫사랑 얘기를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죠.(웃음) 들어보니까 한국 사람이랑 똑같더라고요. 첫사랑 때문에 즐거웠고 힘들었던 기억이 비슷했어요.
존원_아마도 그게 우리가 이렇게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윤은 아주 세심한 사람인 것 같아요. 저처럼 여린 마음을 가졌죠. 그는 이미 성공했고 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세심한 부분이 있는 거죠. 윤과 저는 어떠한 ‘관계’를 형성한 것 같아요. 저를 집에도 초대해줬거든요. 김치도 같이 먹었고요.(웃음)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이 관계를 유지해갔으면 좋겠어요.

윤종신_이번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어땠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요.
존원_저 사실 되게 겁먹었었어요. 왜냐면 이전에 윤이 해왔던 것들을 봤는데, 모든 게 굉장히 전문적인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강렬한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굉장히 화려한 색감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에너지가 가득한 느낌이 좋겠다 싶었죠.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제 그림이 노래와 어우러져서 어떤 구원자의 역할을 했으면 하고 바랐어요. 왜냐면 예술은 저를 구원했거든요.

윤종신_최근 존의 작품을 보면 잘 정돈된 듯한 작품이 많았는데, 이번 작품은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존원_맞아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에너지에 중점을 두거든요. 이번 작품은 그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퍼포먼스이기도 했기 때문에 움직임을 담고 싶었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그 에너지를 느꼈으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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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술가로서 우리의 진짜 재능을 보여줘야 해요. 그 재능은 살아남는 거예요. 아주 중요하죠.”

윤종신_존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요?
존원_저는 여행을 굉장히 많이 해요. 행운이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흥미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요. 자기 안에 에너지를 갖고 있는 열정적인 사람,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특히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요. 한국에 와서 윤과 식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윤의 세상을 본 것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윤종신_그래서 존에게 휴머니티가 느껴지는 거였어.(웃음) 주로 어떤 작업적 환경을 선호해요? 선호하는 도구나 색깔이 있는지 궁금해요.
존원_지금은 주로 오일 페인팅을 해요. 오일 페인팅은 시간이 오래 걸려요. 말리는 시간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제가 다시 파리로 돌아가면요, 종이에 그려보고 싶어요. 아시아에서 먹으로 그림 많이 그리잖아요. 그래서 다음번에는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네요. 사실 저는 명확한 선호를 가진 것 같지는 않아요. 저에게 더 중요한 것은 표현이에요. 제 자신을 표출하는 거요. 도구가 무엇이든 제 자신을 표현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윤종신_이번에 작업하는 걸 보면서 흡수력이 대단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존원_주어진 상황에 따라 맞추는 거죠. 이번 작업에서도 비디오 촬영을 위해 유리에 그림을 그리는 부분이 있었죠. 그때 사실 ‘뭘 해야 하지?’하는 생각을 했어요.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존, 네가 아는 대로만 해.’라고요. 너무 이상한 짓을 하지도 말고 평소대로 하자고요. 그때는 뭔가 엉망이 될 수도 있는 실험적인 것들 대신에 익숙한 것을 했어요.

윤종신_당신에게 창작이나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에요?
존원_다양한 게 있어요.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죠. 저의 스타일이 계속 발전하는 걸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해요. 20년 전의 저와 똑같은 걸 반복적으로 하긴 싫죠. 제 삶이 어떠한 발전이나 진화의 예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의 예술이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과 제가 작품을 통해 하는 이야기가 예전보다 더 정교해지고 있다는 게 중요해요.

윤종신_저랑 비슷한 것 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저도 나이 들면서 ‘컨티뉴잉’이 가장 중요한 꿈이 되었거든요. 이건 히트하고 환호를 받고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 거죠.
존원_어제도 우리는 이런 얘기를 했죠. 저도 윤도 이제 더이상 젊지 않다고요. 한국에 와보니 젊은 사람들을 겨냥한 케이팝이 유행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게 반드시 윤 같은 윗세대가 한 켠으로 밀려나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윤이 하는 예술 역시 계속되어야 하죠.

윤종신_그래서 저는 요즘 존원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좀 부럽기도 해요. 4, 50대가 되어서야 만개하고 존경받을 수 있잖아요. 제가 있는 대중 음악계는 어설픈 2, 30대가 큰 박수를 받고 주목받으니까요. 저는 지금이야말로 진짜로 음악을 할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이제 윤종신은 오래 봤으니까’라고 생각한다는 게 참 아쉬워요.
존원_뮤지션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우리는 예술가로서 우리의 진짜 재능을 보여줘야 해요. 그 재능은 살아남는 거예요. 아주 중요하죠.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소수의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사람이 많다면 좋을 거예요.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도 좋아요.

윤종신_사랑받는 양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인기라는 것은 그야말로 질이 아니라 양인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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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주 높은 곳으로 갔다가 한 번에 떨어져 버리는 건 원치 않아요. 좀 덜 높더라도 지속적으로 저를 표현하는 삶을 살길 원해요.”

윤종신_작업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요?
존원_음악이요. 음악은 늘 동행하는 존재예요. 가끔은 사운드 트랙처럼 느껴져요. 영화에 배경음악이 있잖아요. 작업할 때도 음악이 필요해요. 저는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같아요. 음악은 저의 안식처(comfort zone)이죠. 영감을 주고요. 저는 아침부터 음악을 들어요. 예술과 음악은 마치 평행선처럼 늘 같이 존재해요. 음악은 제 인생의 템포 같아요. 제 인생에 리듬을 만들어주죠.

윤종신_무엇을 이루고 싶은가요?
존원_예술가로서의 경력을 계속 갖는 거요. 지속하는 것. 저는 아주 높은 곳으로 갔다가 한 번에 떨어져 버리는 건 원치 않아요. 좀 덜 높더라도 지속적으로 저를 표현하는 삶을 살길 원해요. 그렇게만 된다면 제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겠죠. 그게 제 목표예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요. 그러기 위해 매일 매일 일을 해요. 예술가로서 사는 것은 아주 자유로워요. 한 번 그 맛을 보면 절대 다른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죠. 예술가로서 자유롭기 위해 저는 아주 일을 열심히 해요. 정말로 자유롭지 않은 순간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단 자유롭죠. 그래서 제 목표는 계속 자유로울 것, 계속 스스로를 표현할 것인 것 같아요. 계속 여행하고, 계속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까지도요.

윤종신_현재 진행 중인 다른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세요.
존원_아주 큰 프로젝트가 있어요. 인생에서 제일 무서운 프로젝트예요.(웃음) 살짝 귀띔을 하자면 한국에서 좀 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약 1년 동안 머물면서요. 프랑스에서도 안정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 작업한다는 건 좀 겁이 나는 일이에요. 프랑스에서의 리듬을 잃고 싶진 않기 때문이죠.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그래요.

윤종신_이렇게 뭔가 겁이 나고 무서움을 느낀 다음에는 늘 좋은 결과가 있지 않던가요?
존원_네, 맞아요.(웃음)

윤종신_한국에서 전시 계획은요?
존원_있어요. 현재 진행 중이에요.

윤종신_혹시 전시가 그 무서운 프로젝트인가요?
존원_아뇨, 전시는 무섭지 않아요. 무서운 건 이곳에서 사는 것이죠. 여행하는 것은 즐겁지만 사는 건 또 어려운 일이잖아요. 적응도 해야 하고, 외로움도 있고요. 그래도 한국엔 좋은 친구들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김치도 있고요.(웃음)

윤종신_존이 우리 집에 왔을 때가 하필 김장 날이어서 그날 한 겉절이를 먹었는데,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그 전날에는 되게 유명한 한정식집에서 3년 묵은지를 먹었는데, 그건 좀 힘들어했거든요.(웃음)
존원_맞아요, 윤의 집에서 만든 김치가 더 좋았어요.

윤종신_역시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날 만든 겉절이를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존원_그거 되게 위험한 음식이더라고요. 계속 먹게 되어서.

윤종신_마지막으로 <월간 윤종신> 구독자들에게 인사해주세요.
존원_안녕하세요! 이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한 해 번창하시고, 건강하길 바랄게요. 최고의 2016년이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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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원(JonOne)
본명 존 페레요(John Andrew Perello). 뉴욕 할렘가 출생으로 17세 때 거리 낙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1984년에는 그래피티 스튜디오인 ‘156 All Starz’를 창립해 그래피티 아트의 확산을 주도했다. 그래피티를 단순한 거리 낙서에서 세계적인 현대미술로 발전시킨 아티스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최근에는 페리에, 에어프랑스, 롤스로이스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파리에 살며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