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리턴>(1996)

조나 힐의 연출 데뷔작 <미드90>(2018)의 주인공은 ‘땡볕’ 스티비(서니 설직)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건 ‘존나네’(올란 프레나트)였다. 스티비의 인생에서 ‘존나네’의 위치는 기껏해야 조연일 것이다. 무리 내 위치는 스케이트보드 실력으로 보나 책임감으로 보나 레이(나-켈 스미스)에게 밀리고, 스티비와 애증 관계로 묶이는 건 형 이안(루카스 헤지스)이나 엄마 데브니(캐서린 워터스톤), 심지어는 루벤(지오 갈리시아)에게도 밀린다. 무리 내에서 이래저래 어정쩡한 위치에 놓인 ‘존나네’가 제일 잘 할 줄 아는 건 하나, 막 나가는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열어보려는 레이와 달리, 일찌감치 그럴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접은 ‘존나네’는 오직 그 순간만을 산다. 술에 취해 대거리를 하고, 여자들이 모여 있는 파티를 찾아 헤매며, 누구와 시비가 붙든 무조건 일단 센 척을 하고 보는 소년. 생애 처음으로 온갖 자극에 노출된 스티비는 ‘존나네’가 이끄는 대로 온갖 종류의 쾌락에 몰두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쟤는 대체 어떻게 나이 먹으려고 저러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존나네’는 불안과 불편, 연민과 경멸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캐릭터다.

“쟤는 대체 어떻게 나이 먹으려고 저러는 걸까.” 기타노 다케시의 1996년작 <키즈 리턴>은 바로 이 질문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학교 선생에겐 엿이나 먹이고 애들한테는 삥이나 뜯으며 시간을 죽이던 답 없는 고등학생 마사루(카네코 켄)와 신지(안도 마사노부)에겐 이렇다 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삥을 뜯었던 학생 하나가 권투선수를 데려와 복수를 감행하기 전까지는. 처음 보는 권투선수에게 맥없이 당한 마사루는 자신도 권투를 배우겠다며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하고, 자신을 따르던 후배 신지에게도 함께 권투를 배울 것을 권한다.

그러나 절친 레이와 ‘존나네’가 거의 비슷한 스케이트보드 실력을 갖추고도 한 끗 차이로 레이가 돋보였던 것처럼, 절친 마사루와 신지 사이에도 실력의 우열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 쪽의 차이는 한 끗 정도가 아니었다. 얼결에 시작했지만 눈부신 재능이 있어 실력이 일취월장 하던 신지와 달리 마사루의 권투 실력은 영 별 볼 일 없었고, 어느 날 홧김에 붙어본 스파링에서 신지에게 무참히 깨진 마사루는 권투와 신지 모두를 두고 떠난다. 깡은 있으나 다른 재능은 하나도 없는 소년들이 굴러 떨어지기 가장 좋은 내리막길인 야쿠자의 길로.

“너처럼 세게 부딪히는 놈은 태어나서 처음 봐. 그럴 필요 없어.” 레이처럼 이런 조언을 해주는 어른이, 마사루나 신지 주변에도 없었던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는 건 한 차례 크게 깨져본 다음의 일이다. 야쿠자 조직 안에서 인정을 받고 차근차근 계단을 오르던 마사루나, 체육관 안에서 유망주로 성장하던 신지의 귀에 그런 말이 쉽게 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마사루는 점점 성공에 취해 오만방자한 태도로 사방에 적을 만들기 시작했고, 신지는 ‘적당히 즐겨도 다시 훈련하면 금방 기력을 회복한다.’며 달콤한 소리나 늘어놓는 별 볼 일 없는 선배와 어울려 술담배에 손을 댄다.

<미드90>의 레이는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좌절을 경험했다. 청춘의 자극에 눈이 멀어 더 많은 것들을 판돈으로 걸기 전에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다. <키즈 리턴>의 마사루와 신지는 그거보단 조금 더 멀리 가버렸다. 둘 다 야쿠자고 권투고 모두 포기하고 다른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도 둘 다 아직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외칠 만한 오기 정도는 주머니 안에 남겨뒀다. 다행히도 아직 죽거나 심하게 다친 건 아니니, 아직 젊으니, 아직 모든 게 다 끝난 게 아니니. “마짱, 우린 이제 끝난 걸까요?” “야 이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다시 ‘존나네’를 생각한다. 그가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변명을 해주려다가 자신도 못 믿을 말을 할 수 없던 탓에 말을 더듬으며 대신 사과를 하던 레이를 생각한다. ‘존나네’는 무사히 나이 먹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마사루와 신지가 그랬던 것처럼 더 많은 걸 잃은 뒤에야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지나가며 한 번쯤 마주쳤을 그 껄렁한 소년들의 성년이 걱정되는 건, 아마 나도 나이 먹었기 때문이겠지.

<키즈 리턴>(1996)
キッズリタ ン
감독
 기타노 다케시
주연 안도 마사노부, 카네코 켄
시놉시스
문제아인 마사루는 신지를 부하처럼 데리고 다니며 학교 수업은 뒤로 한 채 갖은 말썽을 피운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에게 돈을 빼앗겼던 아이가 데리고 온 권투선수에게 제대로 맥도 못 차리고 두들겨 맞은 사건을 계기로 자극받은 마사루는 권투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신지를 데리고 권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