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 – 톡>@온수공간(2019)

때때로 울고 있는 사람을 지켜본다는 건 고요하게 수행하는 하나의 작업 같다. 나는 지금 막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의 슬픔이 작은 정육면체 상자 모양을 한 채 허공에 떠오르는 것을 발견한다. 그 상자는 입구도 출구도 없으며 질감은 약간 투박하고 색깔은 잿빛을 띠고 있다. 그 사람이 눈물을 터트릴 때마다  새로 생겨난 상자들은 다시 그 전의 상자 안으로, 그 위로 소리 없이 겹쳐지고 포개진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상자들을 눈으로 한곳에 바지런히 정리해 두는 것이 우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통은 슬픔과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라, 눈 앞의 투명한 상자들은 사방으로 이리저리 흐트러지고, 내 존재나 언어가 전달하고자 애쓰는 위로는 그의 살갗 안으로 침투하지 못한 채 그의 피부 위를 겉돈다. 틱(TIC) 장애의 틱과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 틱톡(TICK-TOCK)의 톡을 합친 온수공간의 전시 <틱-톡>은 질병으로 인해, 혹은 더 나아가 질병과도 같은 사건으로 인해, 삭제되거나 배제된 존재의 경험을 다루며, 사적으로 치부될 수 있는 아픈 사람의 경험을 공동체의 장으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시도다.

전시장 1층에 설치된 장서영의 영상 작품, <스핀-오프>는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벗어난 화자의 반복된 강박과 불안을 다룬다. 레이싱의 무시무시한 속도와 소음 사이 사이, 그녀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온몸을 이불로 감싼 채 몸을 움찔거리며 보이지 않는 상대방에게 읊조린다 ; 고통은 1초 안에 있는 그 작은 순간들을 모두 보고 느끼게 한다고. 고통이 우리의 안과 밖, 늘어나고, 꼬이고, 뒤틀린 우리의 신체와 주변의 세부를 하나씩 느리게 펼쳐보이는 동안, 언어로 표현되고 전달될 수 없는 그녀의 절망감은 분열적인 정경으로 온전히 드러난다. 이 외에도 ‘기다려 주세요’, ‘당신이 호명될 때까지’ , ‘당신은 명단에 없습니다’라는 세 문장이 반복되어 모니터에 나타나는 장서영의 또 다른 작품, <Keep Calm and Wait>는 마치 우리를 병원의 로비나 이민국사무소의 대기실로 이동시켜 경계밖에 존재하는 타자의 자리로 내모는 것만 같다. 전시장의 다음 층에서 내 눈을 조용히 사로잡은 것은 폐쇄된 광주국군병원을 찍은 정희승의 사진 작업들이다. 언제고 벗겨질 벽지처럼 여기저기에 붙여진 이 폐허의 장소가 지금 이 현재라는 시간에, 서울의 이 공간에서 자신의 벌어진 상처를 내보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상처 입거나 아픈 모든 사람들에게 완치라는 미래가 꼭 약속된 것만은 아니기에, 오늘의 날들보다 내일의 날들이 언제나 더 나은 것은 아니기에, 우리가 아픔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건 우리에게 벌어지는 경험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내 몸과 당신 몸의 고유함을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예술의 영역에서 서로의 존재방식을 살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온수공간을 점유한 작업들이 내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일까?

누군가의 고통에 동행한다는 건 깨질듯 바스락거리는 상자를 무릎 위에 올려둔 채 흔들리는 버스에 앉은 기분일지 모르겠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내 무릎도, 내 손도, 내 상자도 흔들리고, 나는 그 상자가 무엇인지 보고, 듣고, 질문하기를 주저한다. 내 손에서 미끄러질까봐, 바스라질지까봐, 산산조각이 날까봐, 잘못 다루었다고 면박을 당할까봐. 그러나 형편없는 모양이 되더라도, 나는 이 상자의 발신자와 공명(共鳴)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주 잠깐의 시간차, 아주 조금의 거리감으로 아픔을 마주하며 우리가 함께(共)하는 울음(鳴).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거쳐 이 상자가 내게 왔는지, 버스에서 내리면 새롭게 되기가 가능한지,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곳으로 함께 갈 수 있는지, 언제 내릴지 모르는 영원한 유예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인 채 함께 바라보는 창밖의 아름다움이 크고 작은 고통에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틱-톡 Tic-Tock》
기간
2019년 8월 15일 ~ 8월 31일
장소 온수공간
《틱-톡》은 만성질환자 혹은 아픈 사람이 처한 상태에 주목하고, 건강한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스테레오타입에 질문을 던지는 전시이다. 전시제목 ‘틱-톡 Tic-Tock’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불규칙적인 근육의 움직임을 보이거나 비자발적으로 소리를 내는 틱(Tic) 장애와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Tick-Tock)를 합친 것으로, 한 개인이 고통 받는 몸, 비정상적인 몸 상태에 의해 스스로 아픔을 자각하는 상태를 뜻한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끊임없이 째깍거리는 시계소리처럼 매 순간 자기 자신에게 닥쳐오는 실존의 상태로서 질병을 의미한다. 전시는 돌봄을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아픔을 삶의 조건으로 수용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신체의 컨디션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아픈 사람의 경험을 다룸으로써 ‘정상적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출처- 온수공간 홈페이지
https://www.onsu-gongg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