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2017), 종현

공연장을 환하게 비추던 빛이 사위어가고 팬라이트가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적막을 뚫고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2018년 2월27~28일, 나는 도쿄에 있었다.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던 샤이니 콘서트가 도쿄돔에서 열린 날이었다.

공연 두 달 전이었다. 종현의 부고를 들은 날은 겨울의 한복판이었다. 하필 너무 춥고 하필 너무 바람이 불었다. 믿어지지 않아 자꾸만 눈을 부볐다.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고 생각했다. 다정하고, 밝고, 사려 깊었던 종현을. “(우리가)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순 없지만 네 인생을 더 즐겁게 만들어줄 순 있어”라고 했던 그 사람의 말을. 팬 사인회에서 한 팬에게 했다는 그 말이 왜 그날 그렇게 사무치게 떠올랐을까. 덕분에 내 인생은 즐거웠고, 또 즐거울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이는 그렇지 못했다. 온몸이 문자 그대로 저렸다.

도쿄돔 무대에 선 멤버는 넷뿐이었다. 네 명의 멤버가 아무리 애를 써도 채워지지 않는 한 사람의 빈자리를 보았다. 또 부러 비워둔 자리 역시 보았다. 그 당연함이 서럽고, 그게 또 좋았다. 완벽하지 않은 무대야말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경험했어야 할 추모니까. 이견이 있었지만 멤버와 팬이 함께 우는 자리는 필요했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평생 긴 장례를 치르면서 살아갈 거라고, 짐작했다.

내상은 짐작보다 깊었다.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부재였다. 종현의 부재를 확인할 때면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요즘도 종종 곤란하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슬픔이 묵직하게 방문하면 마음 둘 곳을 몰라 서성인다. 설명하기 곤란한 슬픔, 동의 받지 못할 슬픔이었다. 애초 ‘아이돌을 좋아한다’라는 게 일정부분 그랬다. 엄청나게 성장한 시장의 크기와 별개로 팬을 낮잡아보는 사회적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그런 시선에 주눅 든 적은 없다. 나는 내가 누군가의 팬임을 일부러라도 숨기지 않았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사실 굉장한 재능 중 하나가 아닐까. 어쩌면 꼭 그만큼이 삶이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싫어하는 것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늘려가면서 살고 싶었다. 아이돌을, 샤이니를 좋아하는 일도 그 목록 중 하나다. 덕분에 행복하고, 때때로 기쁘고, 종종 견딘다.

듣고 있으면 귀가 아니라 몸으로 와서 스며드는 목소리가 있다. 나에게는 샤이니의 노래가 그랬다. 감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시도는 언제나 실패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위로와 위안은 온전히 내 것이니까. 일상의 견딜 수 없던 번잡한 마음들이 샤이니의 노래를 듣는 동안 제자리를 찾아가곤 했다.

샤이니가 활동한 10년은 한국사회의 답답한 공기와 맞물려 내게는 숨 쉴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상식이라 여겼던 많은 것들이 후퇴를 반복하며 무너졌던 지난 보수정권을 경험하는 와중에 ‘내가 21세기를 살고 있구나’를 감각할 수 있는 건 샤이니 뿐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케이팝이 이렇게 좋은 미래와 현재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그 탁월함에 매번 새롭게 감탄한다. 그룹과 멤버 모두의 ‘앞으로’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가운데 이제 더 이상 당연할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음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대지만 종현의 앨범을 들을 때면 CD라는 번거로움을 선택하게 된다. CD는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창작자가 원했던 순서와 방향으로 들어야만 하는 매체다. 싱글앨범이 대세인 시대에 수록곡이 7~8곡에 달하는 정규앨범을 내고, CD로 들어야만 온전히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다시’ 가르쳐준 사람이 종현이었다. 첫 솔로앨범 [BASE](2015)를 내놓을 때 종현은 CD에서만 들을 수 있는 히든 트랙을 넣었다. 생전 마지막 앨범이 된 소품집 [Op.2](2017)도 그랬다.

“음반을 안 사면 들을 수 없는 트랙을 만들었는데, 노골적으로 음반을 사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에요. 인정하기 싫지만 음반 시장 상황은 아주 안 좋아요. 음반 시장에 속해 있고,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고민하게 돼요. 안 될 걸 안다고 나마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싫어요.”([DAZED], 2015년 2월 인터뷰)

사는 게 되게 하찮은 날들이 있고 그런 날엔 종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나는 그가 남긴 음악을 붙잡는다.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소품집 [Op.2]의 ‘따뜻한 겨울(Our Season)’의 이 가사는 내가 언제고, 몇 번이고, 앞으로도 오래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덕분에 내 평생이 따뜻해. 고맙다는 말 꼭 전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