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윤종신>이 2015년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월간 토크’의 세 번째 시간. 이번 달의 주인공은 작가 전진우이다. 전진우 작가는 ‘Monthly A’가 소개하는 세 번째 전속 작가로 2014년 4월 Cafe LOB Gallery를 통해 주목받는 신인 작가로 소개된 바 있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환상성이 가득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대담은 3월 20일 청담동에 있는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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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에 자꾸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윤종신_전진우 작가는 어떻게 그림을 시작했나요?

전진우_처음을 떠올려보면, 기억이 나는 건 4살 때인데요. 그때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윤종신_이강훈 작가도 예전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렸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강훈_저는 뭐 신동이었죠. (웃음)

윤종신_이쪽은 보면 다들 신동이었대. (웃음)

전진우_그림은 아무래도 다른 분야보다 본능적이고 직관적이어서 더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윤종신_그럼 4살 때 뭘 그렸어요? 혹시 뭘 그렸는지도 기억나요?

전진우_공주도 그리고 벌도 그리고 꽃도 그렸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때 제가 할머니랑 살았는데, 주변이 논밭이었거든요. 아줌마들도 그렸던 것 같고, TV 속 만화 캐릭터들도 그렸고요.

윤종신_계속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가 뭘까요?

전진우_음, 저 같은 경우는 주변에서 잘 그린다, 잘 그린다 말해줬던 게 그림을 그리게 한 것 같아요. 잘 그렸다는 말에 자꾸 그렸거든요.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또 그리게 되었고, 자꾸 그리다 보니까 예전보다 잘 그리게 되더라고요.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던 거 같아요.

03-3537윤종신_이력을 보니 대학을 도쿄에서 나왔네요? 한국에서 칭찬받는 걸로는 모자랐던 건가요? (웃음)

전진우_처음엔 만화를 배우려고 간 거였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만화, 게임에 푹 빠져 있었거든요. 흔히들 말하는 오타쿠 문화를 좋아했어요. 저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싶었고, 그래서 꼭 나중에 지브리 스튜디오에 입사하고 싶었어요.

윤종신_그런데 전공은 만화가 아니네요?

전진우_일본에 갔더니 제가 들어가고 싶었던 그 애니메이션 학교가 외국인을 안 받아준다는 거예요. (웃음)

윤종신_그걸 일본 가서 안 거예요? (웃음)

전진우_예, 모르고 갔어요. 일본어를 잘 못 해서 몰랐어요. (웃음) 그래서 이를 어쩌나 싶었는데, 주변에서 그렇다면 미술대학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어쨌든 그림을 그리는 거니까 괜찮겠더라고요. 좀 더 큰 개념을 배울 수 있겠다 싶었고요. 그래서 미술학원을 다시 갔어요. 일본의 입시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달리 유화를 해야 하거든요.

윤종신_아, 유화로 시험을 봐요? 다르네요. 우리나라는 보통 데생으로 시험을 보는데?

이강훈_요즘에는 파인아트로 시작해도 아무래도 산업이 발달하다 보니까 만화나 게임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전진우 작가는 그 반대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전진우_다행히 일본 대학이 저랑 좀 잘 맞았어요. 일본 미술가들이 만화나 팝아트나 일러스트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라 요시토모나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작가들을 보면 오타쿠 문화로 시작된 현대 미술로 작가거든요. 그런 아티스트들을 보면서 나중에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죠. 나도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제 작품에도 그런 느낌이 있을 거예요.

02-3423내가 어떤 색감, 형태, 재료에 반응하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게 중요해요.

윤종신_전진우 작가의 작품은 얼핏 봐도 ‘이건 전진우이다’ 싶을 만큼 스타일이 뚜렷합니다. 지금의 스타일이 어떻게 형성되었나요?

전진우_음,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음)

윤종신_얼핏 생각하기엔 이렇게 그릴 수도 있고 저렇게도 그릴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작가들이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특별히 아이덴티티를 정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나요?

이강훈_그건 작가마다 생각이 다를 거 같아요. 저의 경우는 스타일을 일부러 만들지 않으려는 케이스인데요. 제가 상업적인 영역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제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게 내가 모든 걸 다 잊고 순수하게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했단 생각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그런 작업들을 하는 건데, 의도적으로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면, 또 다시 나를 구속하는 게 아닐까 싶은 거예요. 저는 굳이 억지로 의식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타일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윤종신_저도 비슷한 게 여러 가지를 다 해보고 싶거든요. 락도 하고 싶고 포크고 하고 싶어서 다양하게 시도해요. 뭐, 그래도 다 윤종신스럽다고들 하지만요. (웃음) 전진우 작가님은 어때요?

전진우_저도 스타일이라는 건 노력에 앞서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인격이 확 바뀌지 않는 한, 자기의 틀을 벗어나기는 힘든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색감, 형태, 재료를 사용하겠다고 정하지만, 사실 그 선택 뒤에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쌓인 배경과 기준이 있거든요. 말을 배우기 전, 언어로 세상을 인식하기 전에 느꼈던 감정부터 시작되어서 만들어질 거예요. 그게 곧 취향으로 드러나게 되고요. 내가 어떤 색감, 형태, 재료에 반응하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게 중요해요.

이강훈_항상 어떤 선택지가 주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해나가면서, 지금의 나로 좁혀지는 거죠. 어느 작가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그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윤종신_계속 얼굴을 그린다는 것도 전진우 작가만의 스타일이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 같습니다. 얼굴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을까요? 특별히 얼굴을 그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전진우_아, 이것도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윤종신_얼굴에 계속 마음이 가는 건가요? 아무래도 자신의 작업에 계속 얼굴이 등장하는 걸 보면 생각을 해보게 될 것 같아서요.

전진우_저 같은 경우는 굳이 내가 왜 얼굴에 관심을 두는지 그 이유를 특별히 알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얼굴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은 해요. 왜 곰탕을 잘 끓이는 사람은 다른 게 아니라 곰탕을 끓여야 그 맛이 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몸까지는 안 가고 얼굴만 그리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얼굴만 계속 연습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굳혀진 게 아닐까 싶고요. 아직은 다른 걸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안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윤종신_얼굴이 아닌 다른 것도 그리나요? 공개되지 않은 작품 중에서요.

전진우_지금은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있어요. 발표된 것처럼 소년의 얼굴로 표현한 작품이 있고, 다른 건 조금 어두운 게 있어요.

이강훈_야하고 세요. 좋아요, 아주. (웃음)

전진우_어둡고, 스토리가 있어요. (웃음)

03-3487제가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는 소설처럼 1막부터 8막까지의 챕터가 있어요.

윤종신_혹시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었나요?

전진우_아, 제가 그림을 다시 그린 지 몇 년 안 되어요. 중간에 연극을 했어요. 정말 하고 싶어서 2년 정도 연극판에 있었어요.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하고. 악극도 하고요.

윤종신_토탈 아티스트이군요. (웃음)

전진우_하고 싶더라고요. 방황을 좀 한 거죠.

윤종신_역시 끼가 있었네! 요즘엔 다방면에 걸친 끼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어느 분야든 볼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거요. 그게 트렌드인 거 같기도 하고요. 음악 잘하는 친구가 너무 멋을 모르면 또 매력이 없더라고요. 이제 음악을 하는 사람도 영상도 볼 줄 알고, 패션도 알아야 하는 거 같아요. 누군가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을 하는 거니까요. 노래만 잘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은 회사 입장에서도 좀 재미가 없죠. 그림을 다시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전진우_3년 정도 됐어요.

윤종신_전진우 작가는 앞서 소개된 장콸, 김시훈 작가와는 달리 Cafe LOB에서 전시했던, 비교적 신인인 작가이기도 합니다. 작년 4월이었죠? 그 당시 진행했던 미니 인터뷰에서 작업 중인 그림에 큰 이야기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이번에는 어떤 큰 이야기의 부분만 보여준 거라면서, 그 큰 이야기의 내용은 아직 비밀이라고 했었죠.

전진우_네, 맞아요. (웃음)

윤종신_이제 1년이 지났는데, 그 이야기에 대해 좀 더 말해줄 수 있나요?

전진우_제가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는 소설처럼 1막부터 8막까지의 챕터가 있어요. 어떤 소년의 여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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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_그렇다면 지금까지 공개된 작품들은 어디에 있는 거예요? 어느 챕터까지 온 건가요?

전진우_아직 1막이에요.

윤종신_그럼 8막까지 가려면 꽤 오래 걸리겠군요.

이강훈_평생에 걸친 작업인가요? (웃음)

전진우_시간에 대한 이야기에요. 자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소년이 하루 동안 겪는 사건들을 보여주는 건데, 그 하루에 인생을 압축해서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에요. 24시간을 시간에 따라 여덟 개의 챕터로 나눴어요. 황혼, 아침, 정오, 밤, 이런 식으로요. 아, 여기까지요. (웃음) 저도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modu/ 37X26cm.jpg/ 종이에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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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37X26cm.jpg/ 종이에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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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punishment/ 37X26cm.jpg/ 종이에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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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과 돌들이 있는 풍경/ 37X26cm.jpg/ 종이에 연필
유성과 돌들이 있는 풍경/ 37X26cm.jpg/ 종이에 연필
closing/ 37X26cm.jpg/ 종이에 색연필
closing/ 37X26cm.jpg/ 종이에 색연필

전진우
84년 광주 출생. 도쿄 조형대 회화 전공. 주로 연필과 색연필,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고 있는 미술 작가이다. 2013년부터 특정 인물이 아닌 작가 개인의 심상을 투과시켜 만화 캐릭터의 속성을 띈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소년의 상’을 반복해서 그리고 있다. 또 단편적인 드로잉들에서 파생된 스토리텔링적인 이미지들을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연결해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평면 작업과 입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부 드로잉 작품들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2014 ‘서울문화재단 공모당선작가 A Dim ray of light’전, 문화숲갤러리, 서울.
‘월간윤종신 4월 작가전’, 카페 LOB, 서울
2009 ‘Debut’전, cafe jinos, 광주
2007 ‘Portrait freak’전
space NODE in Tokyo zokei univ. Tokyo.
2014 ‘오늘의살롱’전, 커먼센터, 서울
2008 ‘7/14’전, Gallery moris, Tokyo
2015 월간윤종신 2015년 3월호 ‘Memory’ 커버 아트웍
2013 월간CA 9월호 ‘대단한 영화제 대단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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