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The World(1985), USA for Africa

처음으로 들었던 음악이 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면서 클래식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접했던 것 같고, 집에 있던 전축에서 흘러나온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나 시카고의 음악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게 감동을 준 음악은 따로 있었다. 1985년 어느 날, 조그마한 티브이 화면으로 주한미군방송인 ‘AFKN’을 통해 흘러나왔던 그 노래와 영상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영어로 된 가사의 내용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유명한 것 같은 가수들이 한데 모여 벅찬 소리로 합창하던 그 모습만으로 뭔가 특별한 곡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린 꼬마의 가슴을 뛰게 만든 그 아름다운 선율의 제목은 바로 ‘We Are the World’였다. 아직은 가요나 팝송보다 동요와 만화영화 주제곡이 더 익숙한,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내게 이 곡이 전해 준 울림은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떤 새로운 종류의 것이었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기아를 돕기 위한 노래라니. 세상에는 누군가를 돕는 음악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이 새삼 커 보였던 순간이었다.

청소년이 되고 자연스럽게 ‘팝송’에 심취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 추억에 불과했던 이 노래를 다시 제대로 음미해 볼 기회가 생겼다. 배철수 아저씨는 이 슈퍼그룹 프로젝트의 이름이 ‘USA for Africa’이며 80년대 초반 당시 대기근으로 참혹한 피해를 입은 에티오피아를 돕기 위한 캠페인 송이라고 했다. 또한 이 감동적인 인류애적 가사를 쓴 이가 그때까지만 해도 댄스 가수 정도로만 알고 있던 마이클 잭슨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참여했던 가수들이 녹음 도중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뒷이야기 등 이제 막 팝 음악에 입문한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낭만적인 요소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던 음반 대신 ‘음악캠프’의 방송을 녹음한 테이프를 그야말로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뿐인가. 다이애나 로스, 윌리 넬슨, 레이 찰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밥 딜런 등등 곡에 참여한 전설적인 뮤지션들을 하나하나 찾아 들으며 음악 세계를 조금씩 넓혀갈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대학에 진학한 후 이 곡을 또 새롭게 다시 만났다. 당시 한창 빠져 있던 PC 통신 동호회를 통해 우연히 위 아 더 월드의 제작과정과 뮤직비디오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미 여러 번 복사를 거친 탓인지 화질은 열악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늘 궁금했던 목소리의 주인공과 음악의 뒷이야기들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A&M 스튜디오에서 배우 제인 폰다의 진행으로 시작되는 이 영상에는 곡을 만든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세션맨들과 함께 데모를 녹음하는 모습, 프로듀서 퀸시 존스가 솔로 보컬리스트들의 디렉팅을 일일이 관장하는 모습,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익숙한 최종 버전이 만들어지는 보컬 녹음 장면, 그리고 엔지니어인 움베르토 가티카의 후반 작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스튜디오 레코딩 과정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는 이미 음악을 취미생활 이상의 진지한 것으로 삼기 시작한 내게 음악 산업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잠시나마 내가 뮤지션의 꿈을 꾸게 되었던 것, 결국 음악을 공부하고 평론이라는 길을 택하게 된 것에는 분명 이 곡의 영향이 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는 녹음이 시작되기 전 참여한 뮤지션들에게 그들의 자아를 스튜디오 문밖에 맡겨둘 것을 요청했고 저마다 자존감이 대단했던 뮤지션들은 모두 그 부탁에 겸손히 응하고 녹음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도 누군가를 돕는 것이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음악이 그저 나의 일 혹은 남의 일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때, 30여 년 전 음악으로 사람을 한데 묶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뮤지션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더이상 이 세상이 어린 시절 희망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면 ‘우리는 세계, 우리는 아이들’이라는 저 순진한 박애주의적 메시지를 다시 또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