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토로의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보았고, 호킨스의 영화라 중얼거리며 나왔다. 물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은 괴수에 대한 사랑으로 필모그래피를 꽉꽉 눌러 채웠던 기예르모 델 토로의 인장이 가득 찍힌 영화다. 그와 아주 오래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더그 존스가 주연을 맡았고, 동화적인 세계 사이 사이에 잔혹한 비극의 순간을 슬며시 끼워 넣고 좋아하는 델 토로의 우주도 여전히 찬란하다. 그러나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이 영화는 샐리 호킨스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작품이다. 델 토로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호킨스가 아니면 이 영화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던 델 토로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애프터 파티 자리에서 만취한 상태로 술기운을 빌어 호킨스에게 출연해 달라고 러브콜을 보냈노라 회고했다.

최근 몇 년간 샐리 호킨스는 종종 홀로 외롭게 서 있던 타자를 향해 먼저 손을 뻗고 스스로 사랑을 선언하는 이의 얼굴로 스크린을 빛내 왔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먼저 어인(더그 존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다가가 적극적으로 제 사랑을 만들어 나간 것도 일라이자(샐리 호킨스)였고, <패딩턴>(2014) 프랜차이즈에서 패딩턴(벤 휘쇼)에게 성큼 다가가 말을 걸고 가족으로 끌어당긴 이도 역시 매리(샐리 호킨스)였다. 초면의, 낯선, 인간이 아닌 무언가에게 먼저 다가가 주체적으로 사랑을 선언하는 사람. 그런 순간들을 연기할 때마다 샐리 호킨스 특유의 여리고 섬세한 이목구비에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생기와 애정이 넘쳐 흐른다. 마치 알전구에 불이 들어올 때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가늘던 필라멘트가 새하얗게 달아올라 사방을 빛내는 것처럼. 어인을 품에 안고 그 어깨 너머로 흘낏 자일스(리처드 젠킨스)를 바라보는 일라이자의 눈빛은 더 바랄 것 없이 행복만으로 충만하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특수분장 수트를 입은 더그 존스보다, 샐리 호킨스의 반짝이는 눈빛의 비주얼이 더 경이롭다. 어쩌면 인간의 눈빛이 저렇게 희열과 행복만으로 충만할 수 있지? 어쩌면 저렇게 행복을 확신할 수 있지?

<내 사랑>(2016)의 모드 루이스(샐리 호킨스)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그가 에버렛(에단 호크)을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건 아니었다. 모드는 장애가 있단 이유로 자신을 언제까지나 한정치산자 취급하는 가족들로부터 독립하고 싶었고, 한 평 남짓한 오두막에서 홀로 살던 에버렛은 입주 가정부가 필요했을 뿐이다. 철저히 서로의 필요로 인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시작했지만, 모드는 도무지 세상과 소통할 줄 모르는 뒤틀린 남자 에버렛에게 사랑을 느낀다. 끊임없이 세상을 두려워해 상대를 밀어내기만 하는 짐승 같은 남자 에버렛에게 먼저 다가가 “어차피 이럴 거라면 결혼하자. 나는 당신이 좋고 당신에겐 내가 필요하다.”라고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도 모드였고, 에버렛에게 살아갈 의미를 일러주며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준 것 또한 모드였다. 흔히 장애를 지닌 예술가와 그의 파트너를 다룬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 상대를 먼저 알아보고 상대를 구원하는 건 언제나 모드였다. 늘 겁내고 뒤로 물러서길 반복했던 에버렛과 달리, 모드는 두 사람이 일굴 수 있는 행복은 어떤 모양인지 확신하고 있었다.

유난히도 길고 추웠던 겨울이 더디게 물러나는 동안, 나는 우울할 때마다 <패딩턴>과 <내 사랑>을 꺼내어 돌려보았다. 마치 깊은 새벽 이른 출근길에 나선 이들이 백열전구 앞에 가까이 서서 그 온기라도 쬐려 하듯이. 이제 그 리스트 옆에 <패딩턴 2>(2018)와 <셰이프 오브 워터>를 세워놓을 수 있게 되었다. 겉모습이 나와 다르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나와 다른 이라 하더라도, 오래 들여다보고 손을 뻗으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나아가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샐리 호킨스의 온기가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므로. 나와 다른 존재를 주저없이 배척하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득세하는 겨울 같은 오늘의 세상을 나려면, 당신의 그 온기가 필요할 것이다.

<내 사랑>(2016)
Maudie
감독
에이슬링 월쉬
주연 샐리 호킨스, 에단 호크
시놉시스
운명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집에서 만난 에버렛과 모드. 혼자인 게 익숙했던 이들은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가며 깊은 사랑을 하게 되고 서로의 사랑을 풍경처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