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인데도 기억에 생생하다. ‘수정’과 검은 고양이의 처절한 실랑이가 벌어지는 페이지를 읽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은 나에 대한 어떤 점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는 동물―검은 고양이 같은―을 죽일 수도 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식은땀이 날 만큼 끔찍한 깨달음이지만, 생생한 묘사를 읽다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묘한 경험이었다. 그런 강렬한 체험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 소설, 김사과의 『미나』를 추천하며 감상을 얘기해달라고 했다. 말로만 추천하면 안 읽을 것 같아서 책을 선물하며 후기를 구하다 문득, 이 소설은 ‘선물’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사과 소설의 폭력과 잔인함은 『미나』에서 갓 자라나고 있는 수준이었다면, 『테러의 시』에선 다 여물다 못해 터져버린다. 이 책을 읽어가는 일 역시 무척 괴로웠지만, 어딘가 마음에 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려 했는데 또 좀 망설여졌다. 이 소설은 ‘추천’해도 되는 것일까. 읽다 보면 감당하기 힘든 폭력과 잔인함에 잠시 허공을 보며 쉬기를 반복하게 되지만, 읽기를 그만둘 마음이 들진 않았다. 괴롭지만 ‘볼만한 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사과의 소설은 내가 사는 이곳의 “병든 아름다움*”으로 꽉 차 있다. 미쳐 있다는 것을 알지만 왠지 모르게 매료되는 혹은 매혹되었다고 착각하게 하는 ‘현실’이 폭력적이고 과장된 옷을 입어 더 분명하고 창창하게 보인다. 이 현실에 분노한 미친 인물들이 소설을 풀어간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개 낭만이나 뒤끝 같은 게 없고 단호하며 끝장까지 간다.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과정은 그 자체로 날것이고 강인해서 매력이 있다. 그리고 어떤 통찰과 통쾌함을 준다. 이를테면 ‘그래, 모두 썩었고 미쳤지. 다 작살이 나야 한다’ 같은. 그러다 종국에는 희미하게 ‘나라도 착하게, 아니 덜 나쁘게 살자’는 마음이 드는데, 아무래도 소설이 그리는 세계에 넌덜머리가 나서 그런 것 같다. 세계의 속살이 이미 꽤 폭력적이고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비관적일까. 나보다 더 분노한 미친 인물들이 현실을 부서뜨리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감정의 양상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은 괴롭지만 재미있고 나름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김사과를 추천하고 싶다.

* “병든 아름다움”은 김사과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미나』
지은이 김사과
출판사 창비
출간일 2008-01-04
『미나』는 김사과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학벌지상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한 박지예, 친구의 자살 소식에 충격받아 옮긴 대안학교에서조차 적응하지 못하는 미나, 황금만능주의와 허영심에 가득 찬 어른들을 흉내 내는 수정. 이야기는 삐딱한 십대의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학창시절 학생운동과 여성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유럽산 가방을 모으는 취미로 허영심을 채우는 미나 어머니나, 프랑스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P시의 사교육 시장을 살찌우며 과외를 하는 논술 선생,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한심한 지식인 미나 아버지 들은 형편없는 어른들을 표상한다. 소설은 어른들이 세워놓은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대신 철저하게 뛰어넘는 영악한 십대의 내면을 그리며 자본주의 세계를 비판한다.
『테러의 시』
지은이 김사과
출판사 민음사
출간일 2012-01-30
어린 시절 돼지우리에서 키워졌고, 아버지에 의해 서울로 팔려 와 창녀가 된 조선족 여성 ‘제니’와 마약 딜러였던 아버지 밑에서 개처럼 길러진, 세계 여기저기를 떠돌며 마약중독자로 살아온 ‘리’는 빈민촌에서 함께 마약에 중독되어 살아간다. 이후 그들은 고시원, 교회 같은 곳을 전전하며 엄혹한 세계를 그대로 맞아들인다. 소설가 김사과는 어떤 윤리나 금기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인물들의 폭력과 분노와 광기를 통해 부패와 부정으로 가득한 대한민국 서울의 현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억압과 폭력, 비정함과 양면성을 폭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