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상한 도쿄 생활은 고요한 어딘가에 단정히 앉아 눈높이의 앵글로 오가는 말 사이의 공백, 때로 섞이는 유머와 여유, 정갈하고 쓸쓸한 고독, 도시 산책자의 표정을 구경하는 것이다. 그러니 도쿄의 일상을 상상하는 일은 어쩌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롱테이크를 응시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작가주의 감독들이 그를 향해 영화적 헌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찬사를 먼저 말하지 않고서도, 그는 나 같은 한 세기 후 일상인의 시선과 시점을 바꾼 거장 영화감독이다.

책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오즈 야스지로의 책이다. 그는 총 54편의 영화를 남겼지만, 나이가 들수록 말과 글을 아낀 터라 이 책은 그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1부에서 3부까지 이어지는 산문을 통해 자유롭고 소담한 ‘개인’으로서의 오즈 야스지로를 탐구할 수 있는데,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고 소박하면서 때로 불현듯 날카로운 감각이 글에 드러나 있다. 책 1장의 ’모던 보이 산문’에서는 도쿄의 근대적 삶과 당대의 시선을, 2장의 ’왠지 모르게 한 줄’에서는 부사관으로 징집됐을 당시 전쟁의 비애와 오즈의 인간적인 면모를, 3장의 ’센부리 풀처럼 쓰다’에서는 촬영 현장의 뒷이야기와 추억을 두루두루 만날 수 있다. 책의 맨 마지막 장에는 영화 <도쿄 이야기>(1953)의 감독용 각본을 실어 풍성함을 더했다. 거장 감독이 쓰던 원고에 쓰인 메모뿐 아니라 삭제하거나 고쳐 쓴 신, 추가로 쓴 장면 등을 반영한 원고를 원작 영화와 비교해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은 이 책의 추천글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도 모두와 같은 실수를 하고, 모두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보통의 인간이라는 사실에 왠지 모를 위로와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늘 여유와 유머를 간직하면서도 일관되게 사려 깊고 진지한 그의 시선과 태도에는 새삼 경탄하고 만다. 역시 오즈다.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유정미)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지은이 오즈 야스지로
옮긴이 박창학
출간정보 마음산책 / 2017-08-25

『다른 사람』은 남자 친구로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해온 ‘김진아’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그녀는 벌금을 선고받고도 자신을 협박하는 그가 두려워 견딜 수가 없고,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공론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오히려 상황이 그녀에게 불리한 쪽으로 기울면서, 그녀는 수많은 악플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웹 검색을 하다가 눈에 띄는 트윗을, 그녀의 과거를 알지 못하면 쓸 수 없는 글을 발견한다. “김진아는 거짓말쟁이다. 진공청소기 같은 년.” 결국 그녀는 트윗의 주인공을 찾아 대학 시절을 보냈던 안진으로 내려가고, 12년 전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사건의 이면을, 그녀가 그토록 도망쳐서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어했던 마음의 진실을 마주한다.

『다른 사람』은 소설가 강화길의 첫 장편 소설이자 제 2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다. 첫 번째 소설집 『괜찮은 사람』을 통해 여성의 일상에 스며든 폭력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는 그녀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좀 더 긴 호흡의 이야기로 담아냈다. 특유의 날카롭고 묵직한 시선이 빛을 발하는 가운데, 여성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혐오와 폭력의 양상이 다양한 인물을 통해 다양한 각도로 드러난다. 우리의 일상에서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똑바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그 누구도 입 밖으로 쉬이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최근 <채널예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소설 속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 실제 사건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대한민국에서 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나서 대학을 다닌 여학생들은 이런 경험이 정말 많아요. 그 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고, 대학 안에서 끝나는 일도 아니에요. 이건 너무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말하지 않을 뿐이에요. 사회적인 시선이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신고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분이죠.” (김주성)

『다른 사람』
지은이 강화길
출간정보 한겨레 출판 / 2017-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