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를 제거하는 소년병들에 관한 이야기인 <랜드 오브 마인>을 보면서, 난 문득 지뢰를 묻은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궁금해졌다. 나치 강점기 5년 동안, 나치는 혹시 모를 연합군의 상륙을 막겠답시고 덴마크의 해안선을 따라 지뢰 220만개를 묻었다.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그 필요를 다 하고 나면 걷어내야 할 물건인데, 대체 뭘 어쩌려는 생각이었을까. 아마 자기네들이 치우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게다. 어차피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랴. 연합군이 상륙한다면 지뢰는 연합군의 발 밑에서 터져 적군의 몸을 산산조각 내며 사라질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들을 불러서 걷어내게 하면 될 거라고. 덴마크인이라거나, 연합군 포로라거나, 아니면 높은 확률로 유태인과 집시들이라거나.

결말은 참혹했다. 제네바 조약은 전쟁포로에게 극심한 노동이나 위험한 작업을 시키는 걸 엄격하게 금하고 있지만, ‘악의 제국’ 나치의 만행에 화가 난 영국과 덴마크는 그 조약을 피해갈 방법을 발견했다. 전쟁포로로 잡아들인 나치들을 ‘전쟁포로’ 대신 ‘자발적으로 투항한 적군 인원’이라 부른 것이다. 너희가 저지른 일이니 너희가 ‘자발적으로’ 협력해 책임 지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하지만 지뢰를 묻자고 결정한 나치의 수뇌부들이 뉘렌베르크에서 전범재판을 받는 동안, 그 뒤처리는 강제로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하게 된 15세에서 18세 사이의 히틀러 유겐트들의 몫이 되었다. 전쟁을 결정하는 건 책상 앞에서 서류를 만지작거리는 노인들이지만, 죽어 나가는 건 결국 젊은이들이다.

인형이 다리가 다쳤다며 울적해 하는 덴마크인 소녀(조 잔드블리엣)에게, 에른스트(에밀 벤톤)는 붕대를 꺼내며 말한다. “군인은 항상 누군가를 도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해.” 막연하게 누군가 도울 준비를 하며 전선에 끌려온 소년병들은 어른들의 죄값을 대신해 죽는다. 나치의 소년들만 그랬던 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쿠리바야시 장군(와타나베 켄)도, LA올림픽 승마 대표선수로 출전했던 니시 남작(이하라 츠요시)도, 아내와 빵집을 운영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사이고(니노미야 카즈나리)도, 황군에게는 야마토 정신이 있으니 물자가 없어도 승전할 수 있다는 허황된 선전에 등이 떠밀려 죽음의 전선으로 끌려갈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이야기다.

전범국가의 군인들 또한 피해자라는 말을 하는 작품이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당사자들에게 유쾌할 리 없다. 해서 쌍둥이 작품인 <아버지의 깃발>이 극장 개봉을 하는 동안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바로 DVD로 직행했다. 하지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전쟁을 부추기던 이들이 퇴장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야마토 정신을 논하던 타니다 대위(반도 타쿠미)는 상부의 퇴각명령을 무시한 채 “군인답게 죽자” 운운하며 부하들에게 자결을 명하고, 땅굴에 숨는 건 비겁하다며 미군과 맞서겠답시고 명령을 불복한 채 전선을 떠난 이토 중령(나카무라 시도)은 데리고 간 부하들이 다 죽은 후에도 저는 살겠다고 얼굴에 피를 묻히고는 시체 더미에 숨는다. 쿠리바야시를 비웃던 오스기 제독(사카가미 노부마사)은 계속 섬의 물이 안 맞아 몸이 안 좋다고 말하다가 전출의 기회가 오자 잽싸게 섬을 떠난다. 전쟁광들이 무책임하게 구는 동안, 전쟁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하던 이들부터 차례로 죽어 나간다.

전쟁을 선포하는 이들은 언제나 근사하고 그럴싸한 말들로 당위를 세운다. 그리고 그 대가의 상당부분은 결정권 없이 전선으로 끌려온 이들부터 치른다. 이젠 모든 게 지겹다는 듯 지뢰밭으로 걸어가던 에른스트의 뒷모습을 보면서, 늘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작은 나라에서 살아가는 나는 전쟁을 결정했던 지도자들의 얼굴과, 툭하면 여차하면 전쟁을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외치는 노인들의 얼굴, 벽돌공장을 운영하겠다던 에른스트와 빵집을 다시 열 생각을 하던 사이고와 닮은 청년들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아비의 죄를 제 피로 대신 씻는 아들들의 역사를 우린 언제까지 반복할 셈인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6)>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와타나베 켄, 니노미아 카즈나리
시놉시스
이오지마에 부임한 첫날 쿠리바야시는 섬을 직접 돌아보던 중, 마침 말을 잘못하여 호되게 맞고 있는 사이고와 다른 병사를 구해주게 된다. 쿠리바야시는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안 요새를 버리고 섬에 터널을 파라고 명령한다. 다른 부대원들은 모두 시간 낭비라며 불만을 품지만 결국 터널을 파기 시작한다. 시미즈는 사이고의 연대에 새로 파견되어 합류하고, 연대원들은 시미즈를, 자신들을 감시하라고 헌병대가 보낸 스파이라고 생각한다. 수리바치가 함락되자, 아다치는 쿠리바야시에게 연대원들과 모두 자살을 하겠다고 허락을 구하나, 쿠리바야시는 그에게 현장에서 철수해 북쪽 동굴의 군대와 합류하라고 명령한다. 결국 명령을 어기고 아다치와 연대원들이 자살을 하자 시미즈와 사이고는 도망쳐 북쪽 동굴까지 찾아간다.
그러나 이토는 이들을 동료들과 함께 죽지 않고 도망친 비겁한 병사들이라며 목을 베어 죽이려 한다. 그 순간 쿠리바야시가 나타나 자신이 철수를 명령했다며 이들의 목숨을 구해준다. 시미즈와 사이고는 함께 탈영하여 항복하기로 하지만, 먼저 탈영한 시미즈가 미군에 의해 사살되고 만다. 결국 남은 병사들은 모두 작전 본부로 돌아가지만, 이미 무기와 식량은 동이 난 상태다. 최후의 일제 공격과 모두가 죽음을 맞이한 뒤, 마지막에 혼자 살아 남은 사이고는 미군에게 발견되어 안전하게 후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