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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이 겨울을 밀어내고 있었다. ‘새것’의 힘은 어마어마하게 세서 몇 개월이나 지치지 않던 차디찬 기운도 낮이면 볕 앞에 허리를 구부렸다. 계절에 옮듯이 성격마저 달라지는 나인데, 이번 봄에는 도통 마음이 넋을 놓지 않았다.

지난해 말, 발신 불명의 메일을 받았다. 아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메일 주소만으로 누구겠거니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꽤 소란한 연말이었고, 메일은 그대로 잊혀졌다. 잊었던 그 메일을 다시 열어보게 된 것은 몇 달이 흘러 2월도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였다. 괴로웠다. 발신 불명의 메일은 그런대로 명확한 저주였고, 타깃이 되었다는 이유로 그 안에 등장하는 모든 저주받은 이들의 불명예를 함께 떠안아야 했다. 최정화의 소설 <지극히 내성적인>이 출간된 것은 그 무렵이다.

2.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된 책의 제목으로 차용된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는 여섯 번째 이야기고, 전체를 통틀어 딱 3번뿐인, ‘나’의 목소리로 기록된 서사다. 맨 앞에 수록된 작품 ‘구두’도 그중 하나인데, 시작은 이렇다. “그때 딱 잘라 여자를 돌려보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습니다”.

‘여자’는 주인공의 집으로 면접을 보러온 가사도우미다. 가정주부인 주인공을 대신하기에 모자랄 데 없는 ‘여자’의 말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자’에게 눅눅한 불안을 느낀다. 내 아이와 금방 친해진 것, 내 남편과 무리 없이 어우러지는 것 모두 경계의 대상이다. 자신의 손때 묻은 집과 집안 곳곳이 ‘여자’와 함께 망가질 것만 같다. ‘내’가 자신의 경계심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여자’에 대해 회고한 것은 그 여자가 자기의 구두를 신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그녀가 나 인줄로 착각하고 내 구두를 신고 갔다’고. 그러나 과연 주인공의 회고는 진실일까?

주인공의 증언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화자의 피해망상적인 모습, 신경증이나 강박장애에 포박된 듯한 모습 때문이다. 이처럼,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주인공은 여섯 번째 작품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소설가가 요양 겸 집필 차 주인공이 사는 시골로 내려온다. 무료하던 나는 될 수 있는 한 살뜰히 그를 챙기지만, 그 작가란 사람, 도통 곁을 주지 않는다. 작가가 문밖에 내놓은 소설을 읽다 들킨 것을 계기로 나와 작가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나의 열등감이 초래한 선망, 그 선망이 초래한 집착은 악의적인 도발로 이어지고 만다.

3.
<지극히 내성적인>의 두 작품에서 주인공들의 ‘내성적인’ 태도는 ‘일방적인’과 같은 의미로 읽히는 면이 있다. ‘구두’에서는 심리적 동기를,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는 결과의 책임을 모조리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기껏 맺은 상대와의 관계는 여기서부터 완전히 균형을 잃는다. 관계라는 것이 아무리 상대성을 전제한다 할지라도, 그 관계에 참여하는 이들의 마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자신도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투쟁 공간이 곧 마음이다. ‘자유로운 관계’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유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얼마나 모순적인가.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의 주인공이 끝내 살인을 한다면, 그 동기는 기껏해야 ‘마음을 배반당했다는 착각’일 것이다. 착각은 어디까지나 자유지만, 착각의 부산물들은 환영 받지 못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주장할 것이다. ‘착각이 아니’라고. 종이칼을 쥔 채 다가와 ‘착각이 아니라 네가 초래한 거야’라고 한다면 얼렁뚱땅 인정해버릴지도 모르겠다.

‘구두’ 속의 ‘여자’와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의 ‘작가’는 어쩌면 나였다. 언젠가 내게 배달된 한 통의 메일은 한 켤레의 구두, 한 자루의 종이칼과 같았다. 지독한 경계와 오해의 대상, 부당한 살해의 위협 앞에 놓인 사람들과 스스로를 동일시 한 것은 지나친 연민이었을까. ‘여자’와 ‘작가’에게 묻는다. “지극히 내성적인, 그리하여 지극히 일방적인 마음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나 소설은 오직 두 명의 ‘나’의 눈에 비친 여자와 작가만을 보여주기에,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알 수 없다. ‘가해’가 진행된 후의 일은 ‘가해자’에게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칼을 휘두른 다음 그들은 눈을 닫았다.

눈을 감으면서 그들은 어떤 통증을 느꼈을까? 이 책을 음미하는 동안, 몇 번이나 불쑥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미쳤고, 결국 아무도 모르게 나았다.’

우리 모두가 낫길 바라며.

<지극히 내성적인>
지은이 최정화
출간 정보 창비 / 2016-02-15
<지극히 내성적인>은 2012년 단편소설 <팜비치>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 최정화의 소설 열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일상 속의 균열과 파동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작가 최정화는 이 소설집을 통해 온전해 보이는 세계 안에 스며 있는 불안의 기미를 내성적인 사람들의 민감한 시선으로 날렵하고 유머러스하게 포착해냈다.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러 온 여자가 안주인 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주인공(「구두」),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불안해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탐닉하지만 여전히 악몽을 꾸는 아내(「오가닉 코튼 베이브」), 한때는 완전무결한 존재였으나 사고로 앞니 여섯개를 잃고 틀니를 하게 된 남편을 무시하게 된 여자(「틀니」), 계약으로 맺어진 애인관계가 친구들에게 들통날까봐 노심초사하는 남자와 그 의심을 일축시키기 위해 감쪽같은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여자(「홍로」), 임신한 십대 딸아이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워하는 아빠(「타투」), 인테리어 소품으로 산 하이데거의 책을 읽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내(「파란 책」), 좁은 집에 사는 이웃이 신경 쓰여 집을 바꿔주려고 갖은 궁리를 하는 소심한 남자(「집이 넓어지고 있어」) 등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열등감이나 죄책감, 피해의식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조금씩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들이다”(강경석 해설). 하지만 이 면면에는 어딘지 나와 닮은, 혹은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모습들이 엿보이기도 한다.

최정화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잠시 현실을 떠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무언가 달라진 점이 있길 바란다”고 썼다. “하다못해 앞서 걷는 사람의 걸음걸이에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여 가던 길을 멈추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소설을 통해 무뎌진 감각을 세련하고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문학의 오랜 소명일 것이다. 그 감각을 깨우러 최정화의 소설이 우리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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