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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에게 가장 큰 이슈는 페미니즘이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여성으로서의 나’에 관해 생각했고, 이야기했으며, 들었다. 만약 페미니즘이 작년에 어떤 식으로 시작됐고, 어떻게 퍼져나갔는지에 대해 아는 이야기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에 관한 관심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개개인별로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은 것이 최초의 시작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에피소드에서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아이를 갖게 된 나나가 아이의 아빠인 모세 씨와 그의 집을 찾아간다. 그 집에서 나나는 요강을 발견하는데 그 요강이란 것은 아버지가 사용하고, 어머니가 청소하는, 그렇게 정해져 있는 물건이다.

“생각할수록 나나는 그게 더 이상한 거야. 실은 그게 가장 이상하고 궁금해. 모세 씨는 왜 그럴까. 모세 씨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할까. 모세 씨의 어머니는 왜 그걸 치울까.” 사용하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물건. 이 상황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모세와 계속 이상하다고 느끼는 나나. 모세는 나나의 이 의구심에 대해 ‘남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이라면 해줄 수 있는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이런 답변에 소설을 읽는 나는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 반대도 가능할까? 엄마는 사용하기만 하고, 아빠는 치우기만 하는. 이 에피소드를 읽고 ‘단연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단정 지어 답할 수는 없다. 게다가 뭐랄까 ‘아빠는 먹기만 하고 엄마는 설거지했다는 걸 몰랐네’라는 식, 그러니까 ‘겨우 이런 식의 깨우침’이 있었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를 늘 분노케 하는 흔한 일 중 하나를 마주했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 데다가 이런 문제에 토를 달 때마다 듣는 대부분의 말 역시 ‘가족이니까’ 혹은 ‘여자는 원래 섬세해서 남자보다 잘해’ 같은 말이라는 것도 이 에피소드가 쿡 쑤셨던 이유다.

‘엄마’라는 존재에게 당연히 부여되는 가정의 일들을 두고 황정은의 소설은 남의 고통 같은 걸 생각하지 않으면 괴물이 된다고 답한다. 저런 것이 가족이라면, 엄마가 된다는 게 저런 것이라면, 누군가는 싸기만 하고 누군가는 남이 싼 똥 치우기만 하는 그런 것이라면 그게 정말 가족일까?
과감히 모세와 가족이 되지 않겠다는 나나의 결심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정확히 말하면 남 일 같지 않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나나는 되뇐다. 천천히, 반복을 거듭하면서. 남들처럼 가족을 이루고 엄마가 될 수는 없지만, 아이를 갖고 살아가겠다는 그의 고민과 결심은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다짐해야만 겨우 지속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여전히 수없이 많은 곳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결정해야만 하며,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돌아오는 비난을 온전히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계속해보겠다’는 의지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에서 발을 떼지 않으려는 수많은 ‘나나’들과, ‘내’가 내릴 선택들을 끝까지, 계속해서 응원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지은이 황정은
출간 정보 창비 / 2014-11-05
황정은의 세 번째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2012년 가을호부터 2013년 여름호까지 ‘소라나나나기’라는 제목으로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연재 종료 후 일 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개고한 끝에 주인공 소라와 나나, 나기의 감정선이 더욱더 깊고 선명해져 행간에서조차 세 인물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작품의 농도가 짙어졌다. 소설은 주인공 소라, 나나, 나기 세 사람의 목소리가 각 장을 이루며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같은 시간, 한 공간에 존재하는 세 사람의 서로 다른 감정의 진술을 각각의 온도로 느낄 수 있다. 서로 갈등하는 소라와 나나의 속마음을 보는 것이나, 공유한 과거를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소설적 장치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황정은은 앞선 두 권의 소설집에서 기발한 상상력과 그것을 구현해내는 뛰어난 언어 조탁력을 보여주었고 그의 첫 장편이자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백의 그림자』에서 기저에 품은 서정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그 서정의 결을 이어가면서도 잔잔하게 흘러가, 폭발적으로 파급되는 황정은식 서정의 마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작은 행동 하나, 대사 한 줄에까지 감정을 밀도 있게 싣고 마지막까지 그 긴장을 놓지 않고 이야기를 완성한다.
작가 특유의 단정하고도 리드미컬한 문장의 점층은 시처럼 울리고, 상처 입은 주인공들이 감당해가는 사랑은 서툴지만 애틋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황정은 소설이 이제는 좀 무섭다”(젊은작가상 심사평)라고 표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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